마태복음 5–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2010-04-07)

 

1. 팔복 - 하나님의 자녀 다운 사람 (5:1-12)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사람들 사이에 화목을 일구어내는 자가 복이 있다. 내가 추구했던 것은 과연 사람들 사이에 화목을 만드는 것이었나, 아니면 사람들을 나와 화목하게 만드는 것이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복되다 하시며, 하나님의 아들답다 하시는 것은 사람들을 나와 화목하게 만드는 얕은 처세술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들을 화목케 하는 깊은 마음 씀, 기도와 눈물, 지혜, 공정함과 의로움…….. 들이다. 한마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아직 너무도 머나먼 길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답게 되어지는 그 길을 따라 날마다 걸어가야 한다.

 

2.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5:33-37)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왜냐하면 나는 내가 한 맹세를 도대체 지켜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한 터럭의 머리카락조차 희거나 검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어떻게 맹세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그 아래 살고 있는 하늘은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보좌이며, 내가 디디고 살아가는 이 땅은 하나님의 왕권이 나타나는 발받침대이다. 걸음을 인도함이 걷는 자에게 달려 있지 않거늘, 한 치 앞을 가름하지 못하는 인생이 어찌 맹세할 수 있단 말인가? 맹세한다는 것은 신뢰를 자기에게 둔다는 것이다. 맹세한다는 것은 자기 욕망을 하나님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욕망하는 것이 있으니 맹세를 하는 것이다.

 

실제의 자기가 '맹세의 내용에 걸맞는 사람'이라면 사실이지 맹세는 필요없는 법이다. 맹세는 실패에 대한 변명이며, 연약함에 대한 위장이다. 자기로서 안 되고, 자기 실력으로서 안 되니, 자기보다 무한히 큰 자(하나님)를 동원하여 자기 욕망을 충족코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맹세로서 자기 보다 큰 자인 하나님을 조작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세상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 ‚옳다. 마땅하다.‘,‘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로 족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며, 그의 자녀로서 마땅히 요구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의 시도가 번번히 좌절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맹세로 실패를 변명하거나, 자기의 약함을 가리거나 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고, 그는 내 체질을 아시는 분이니 말이다.

 

옛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이드 라인,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의! 마치 맹세와 같은 것들! 겉으로 보여지는 지켜냄, 자기 변명들 뿐인 의로움! 나에게 더 이상 그런 의로움은 필요 없다. 나는 그럴듯한 헛된 맹세를 날리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지켜내는 싸움을 싸우도록 부름 받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욕망과 어리석음과 이기심이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가 바로 출발점이다. 사람들의 눈앞에 보여지는 교양 있고 인격적이며 신앙 좋은 사람이 내가 출발할 자리가 아니다. 내가 매일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자리는 여기 '이기심과 자기 중심성을 가진 자'로서, '한 터럭의 머릿털도 스스로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는 자'로서,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온전함을 이루기까지 자기를 쳐서 복종하는 연습과 훈련을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이다.

 

도무지 맹세 따위로 스스로를 부풀리려 하지 말라! 지금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온전함에 이르기까지, 잘라 버려야할 '오른 눈, 오른 손'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