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 22장 1절-53절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를 때 주(主, 퀴리오스)라는 말은, 주권(主權)에 관한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여호와) 하나님을 ‘주’(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주권이 오직 ‘야훼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고백이며,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의 중심을 이룹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직 야훼’라는 신앙을 앞에 내세우며, 이 세상의 잘못된 주권에 대항하며 싸웠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주권은 어떠한 것입니까? 그것은 출애굽을 통하여 노예를 해방하고, 억눌린 자를 풀어 주는 하나님,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 억압하고 군림하는 모든 주권을 미워하며 질그릇 깨듯 깨부수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주님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메시아-왕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의 주권만이 유일한 주권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는 대로 민족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막10:42b-45)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위임하신 주권이 어떠한 것임을 잘 보여줍니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왕은 굶주린 자와 함께 굶주리고, 목마른 자와 함께 목마르고, 나그네 된 자와 함께 나그네 되고, 헐벗은 자와 함께 헐벗고, 병든 자와 함께 병들고, 옥에 갇힌 자와 함께 갇혀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아25:31-46)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의 성격입니다. 이 주권의 성격은 이스라엘의 주이신 ‘야훼’의 주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주권의 성격을 한마디고 표현한다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의 주권은 세상의 주권과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주권이 이 세상에 나타남으로써,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 행사하는 주권의 거짓된 모습이 드러나고,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기독인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주권을 향하여 ‘주’라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는 로마 황제를 ‘주’라고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흘림 위에 세워졌으며, 순교자들의 피흘림을 통하여 성장하였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주권을 향하여 ‘주’라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주권을, 참된 유일한 주권으로 받아들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통치자들이 가진 주권은 불완전한 것이며, 악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이 땅의 통치자들을 폭력으로 전복시키는데 앞장서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폭력은 이 땅의 주권의 성격입니다. 만일 폭력이 하나님의 주권이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폭력으로 이 땅의 통치를 종식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참된 주권은 이 땅의 통치자들을 폭력으로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분입니다.

기독교는 온전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이 땅의 통치자들의 통치를 뒤집어엎습니다. 그것은 불의한 일과 싸우는 것이지만, 이 땅의 폭력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신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주권은 오늘도 주께서 세우신 교회를 통하여 이 땅에 선포되고, 이 세상은 그 영향을 통하여 더욱 온전하여 갑니다.

노예제도의 종식, 절대 왕정의 폐지, 폭력 대신 대화와 설득을 통한 민주정치의 실현, 약자를 보호하는 법제정, 억압을 금지하는 인권 존중 등등,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주권의 영향력을 통하여 얻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기독교는 종교활동만 할뿐이며, 정치활동은 기독교의 일이 아니다.”고 하는 말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을 ‘유일한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만큼 강한 정치적인 주장은 없습니다. 그 고백은 예수님의 주권과 다른 성격의 모든 주권을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그 고백은 십자가에 목숨을 던질 만큼 강한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신 주님이라고 고백할 때, 이 한가지를 분명히 아십시오. 여러분은 예수님의 주권을 따르는 것이며, 이 땅의 모든 주권을 예수님의 주권 아래 복종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임을 말입니다.

그것은 이 땅을 사랑과 평화의 나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며, 약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권력을 고발하고 싸우는 것이며, 모든 군림하는 권력을 낮추어 오히려 섬기는 권력으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는 것임을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이 땅에 실현하는 삶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의 주권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신 십자가, 바로 그 아래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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