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
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마태 5:11-12]

이 말씀은 산상수훈 가운데 제일 첫 번째 시작되는 9복 가운데 마지막 복에 관한 말씀이다. 많은
기독인들은 위의 말씀에 나오는 모욕, 박해, 비난 등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다.

저 말씀에 나오는 모욕이란 게 전도한다며 전철이나 지하철에서 큰 소리를 지르고 다니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짓을 하는 걸 뜻하지 않는다. 비난이란 게 우상을 부순다며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을 도끼로 찍어버려 이웃으로부터 비난을 듣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박해란 게 불의한 일을 저지르다 들켜서 사람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일을 뜻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불의한 일을 저지르고도 뻔뻔스럽게 나서서 모욕당했다며 큰소리 치고 비난받는다며 억울해하고
박해받는다며 죽는시늉으로 비명을 지르는 기독인들도 있더라.

더구나 예수님 때문에 모욕 당하고 비난받고 박해 받는다는 게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들끼리 일어
나는 일을 두고 하신 말씀은 분명히 아니다.

의로운 이의 편에 서서 지지 했다고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가족이나 친구를 알고 있다고 범죄자로 몰려 협박성 수사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의 편에 섰다고 졸지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범죄자로 수사를 당하고
부당한 세무조사를 받고 몽둥이로 얻어맞고 감옥 갇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사실 요즘 한국에선 예수 잘 믿으면 이웃으로부터 심하게 모욕당하고 비난받고 박해?도 받는가 보
다. 얼마나 심하게 비난을 하는 지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른지 꽤 되더라.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도
박해를 당한다며 삭발하고 데모하는 뻔뻔스러운 기독인들도 있더라.

예수님 때문에 기독인들이 모욕과 비난 그리고 박해를 당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다. 기독인들 때문
에 예수님이 모욕과 비난과 박해를 당하신다.

2000년 전에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에게 모욕과 비난을 당했던 예수님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끊임없
이 박해를 당하신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당하실 것이다. 왜냐, 내가 예수님 때문에 모욕과 비난
과 박해를 당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악할수록 온갖 터무니없는 말들로 의로운 이들을 비난하고 모욕하고 박해한다. 하여, 세상
이 악할수록 의로운 이들을 찾기 어렵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과 비난과 박해를 받거든 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
거워하여라”

나는 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나에겐 예수님 때문에 당하고 있는 아무런 모욕이나 비난이나
박해 따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기쁨과 즐거움은 진짜가 아니다.

오늘도 예수님처럼 의로운 삶을 살면서 모욕과 비난과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저 말씀은 참으
로 위로가 되고 복이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그 기쁨과 즐거움이 진짜다.

어떤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가? 예수님 때문에 모욕과 비난과 박해를 당하는 사람에게.
그럼 나는? 당연히 복이 없다.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으니까.

모욕, 비난, 박해 따위를 받지 않아도 그냥 기쁘고 즐겁게 잘 살 수 있으니 예수님 말씀 잘 지키고
산다고 할 수 있을까? 막상 내가 예수님 때문에 모욕과 비난과 박해를 당한다면 나는 정말 기뻐하
고 즐거워할 수 있을까?

복 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 그런데 예수님 때문에 모욕과 비난과 박해를 받는 게 복이란다. 나는
정말 내게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복이 있기를 바라는가..?

주님, 당신께서 말씀하신 그 복이 저에게도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참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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