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 (사 42:1-43:28)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롭고 존귀한 이스라엘은(43:4) 하나님이 친히 이름을 불러 창조하신(43:1) 그의 아들, 딸이다(6). 애굽과 구스를 내어주면 내어주었지 이스라엘을 내어주거나 포기할 생각이 없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 가운데 서 있는) 하나님이다(43:3).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이 그토록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종곧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42:5) 온 땅에 증언할 그의 증인이기 때문이다(43:10). 열방은 모여 회집을 하여도 세상을 창조하고, 사람들에게 호흡과 영을 주시는 하나님이(42:5) 아닌, 헛된 것들을 하나님으로 섬기지만, 이스라엘만큼은 그들의 역사 전체를 통해서 참되신 하나님을 만났고, 그에게 들었고, 그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온 땅에 충만한 하나님 영광을 민족들 가운데 증언할 자(43:7,21)!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그토록 보배로운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은 지금 포로로 끌려가 있고(cf.42:7), 온 땅에 흩어져 있다(43:5,6).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자식들은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다(43:14). 물과 불도 태우거나 침몰하지 않게 하나님께서 지키시겠다던(43:2) 이스라엘의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답은 분명하다. “야곱이 탈취를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에게 넘기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42:24a). 여호와가? 애굽을 내줄 망정 이스라엘을 내줄 생각이 없는 여호와가? 도대체 왜? - 그 물음의 답도 분명하다.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그의 길로 다니고자 하지 않았고, 그의 토라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42:24b)

 

아이러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의로움 때움에, 기쁘게 하고자 하신 일이 하나 있었다. 곧 토라를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었다(42:21). 천지를 짓고, 사람에게 호흡을 주고, 그들로 땅 위에 살도록 (그의) 영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토라를 주신 이유는 그들이 토라에 나타난 하나님의 길을 따라 공평‘정를 행하며 살아감으로, 땅의 모든 족속 또한 토라의 길을 따라 복을 누리며 살아 가게 하기 위함이었다(cf.43:10, 42:1,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귀는 토라를 들었고, 야곱의 눈은 토라를 보았다. 아니 그들의 눈이 친히 하나님을 보았고, 그들의 귀가 친히 하나님을 들었다(43:12). 그런 그들의 눈이 범죄로 인해 감겨졌고, 그들의 귀 또한 불순종으로 인해 막혀 버렸다(43:8). 그리하여 이스라엘 안에 공평이 아닌 탈취와 약탈과 노략과 갇힘이 만연하였으나 그것을 되돌리라 말하는 자가 없었다(42:22).

 

하나님의 영광을 증언할 자,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할 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43:7,21) - 그들 자신이 흑암에 앉았고, 사슬에 묶였고, 포로로 잡혔고, 탈취함으로 탈취를 당했다.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할 자들이 오히려 눈이 감겼고, 사람들의 귀에 토라를 들려줄 자들이 오히려 토라를 듣지 않았다(42:24).

 

그렇다면 이는 하나님의 실패가 아닌가? ‘여호와의 종이며 하나님의 증인인 이스라엘의 실패는 곧 하나님의 실패가 아닌가? 42 1-7절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첫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와 더불어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을 알리신다(42:9; 43:19). 새 일을 시작하셨다는 것은 이전 일의 실패를 인정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새 일을 시작하실 수 있는 것은 이전 일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전에 예언했던 일들이 이제 이루어졌기 때문이란다(42:9). 이루어졌다는 예언했던 일이란 이스라엘의 실패를 이름인가? 신명기 28장 이하, 특히 신명기 30장은 이스라엘의 포로됨 뿐 아니라 돌아옴 또한 예언되어 있다(신30:3). 


패면 실패지 그것을 어떻게 성취라 말할 수 있는가? 또한 실패가 예견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토라를 맡긴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실패한 이스라엘, 이방 백성과 다를 바 없는 이스라엘, 사로 잡혀간 이스라엘은 곧 하나님의 실패가 아닌가? 그러한 이스라엘은 버려져야 하지 않는가? 포기되어야 하지 않는가? 심판을 받아 사라져야 하지 않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단호하다. “야곱, 너를 창조한자, 이스라엘, 너를 지으신 자가 말한다. 너는 두려워 말아라. 내가 너를 구속했고, 내가 네 이름을 불러 내 소유로 삼았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나는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 네 구원자다.“(43:1-3).

 

토라를 듣고, 토라를 따라 살고, 토라를 모든 민족에게 가르쳐야 할 이스라엘이 토라를 듣지 않고 범죄했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여전히 보배롭고 존귀한 자인가? 하나님은 이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행할 것인가? 이스라엘을 열방의 빛으로 삼으려던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의 범죄와 실패로 인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을 통해 열방에 복을 주려던 계획을 망쳐버린 이스라엘은 버려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아직 포기할 생각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토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여 흩으신다. 그들은 흩어진 곳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징벌의 배나 받는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새롭게 자신들을 불러 모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그들을 불러 모으면서 하나님은 그들의 허물을 제거하고,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43:25).

 

그러나 돌이킨 이스라엘이 또다시 토라를 듣지 않고 범죄한다면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이 여호와의 종의 노래 속에서 새 일을 행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선포 가운데 들려진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선택하실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이 뜻했던 일을 이루어 이방에 공의를 베풀 것이다(42:1). 온 해변, 먼 곳의 나라들이 그의 토라를 사모할 것이다(42:4). 이사야 2 3절이 이미 보여주었던 토라를 듣고자 이방인들이 시온으로 몰려오는 그 일이 여호와의 종을 통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방 사람들이 오히려 이스라엘 족속을 향해, “야곱 족속아. 와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2:5) 권고할 것이다.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새로운 일이지만(42:9),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에게 자신의 의, 곧 사랑 알리신다(42:6,21). 하늘과 땅을 창조하고, 그 위에 사람을 짓고, 그에게 호흡을 주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그의 영을 주신 하나님께서(42:5), ‘여호와의 종(42:1)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으로 삼아(42:6), 땅의 모든 족속이 토라가 그려주는 자유와 해방을 누리며 살게 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것이다(42:7).

 

그렇다면 이방인과 동일하게 맹인된 이스라엘, 빛이 필요한 민족들과 동일하게 빛을 잃은 이스라엘은(42:19)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은 결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실것이다(42:3). ‘여호와의 종이스라엘은 지금 뭉개져상한 갈대 같고, ‘희미해져그을음 나는 심지 같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꺾거나 끄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한 사람 여호와의 종소리를 지르거나,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아연약한 듯 보이겠지만, 그는 결코 뭉개지지 않고‘, ‘희미해지지 않을것이다(42:3-4/ 성경기자는 이스라엘과 종의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 일부러 동일한 단어를 사용한다).

 

그을음 나는 심지, 뭉개진 갈대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도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괴롭게 여겼지만“(43:22),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도말하고, 그들의 죄를 기억지 않고, 그들을 부르시며, 그들을 위해 짐을 지실 것이다(cf.43:24).

 

이스라엘에게서 나를 보고, 교회를 본다고 복음의 새로움이 놓쳐질까? 옛 시대와 새 시대의 겹쳐짐은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닫혀진 내 귀가 열리고, 감겨진 내 눈이 열려져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일이(1:6,12,14) 나와 온 교회와 또한 온 세상 만민에게 일어나기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라. 내가 광야에 물을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이다.“(43: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