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노아, 여호와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하다 (6:1-12)

 


창세기 6장의 인류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창세기 5장에서 시작된 아담의 이야기(톨레도트)’에 속한 내용이다. 홍수 사건을 다루는 노아의 이야기(톨레도트)’는 사실 6:9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죽음으로 끝나는 인간의 족보에서 굳이 그들을 낳은 아버지로서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이 마주치게 된 인간의 현실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이었다.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 하나님의 반응은 후회(6,7) ‘근심이었다(6).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노아흐)이 안위(‘니함’)하리라는 소망을 품었지만(5:29), 그가 마주하게 된 현실은 아마도 하나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후회’(‘니함’)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었으리라.

 

자신이 지은 사람이 선과 좋음을 따라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면 살수록 부패와 폭력 가운데서(11) 죽음의 매일을 살아가는 것을 보는 아버지 마음고통그 자체였으리라. 모두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가 있음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그러나 한 사람, 하나님의 눈 안에 일렁이는 은혜(‘’)’를 발견한 자가 있었다. 그가 노아(위로, 안위)’였다.

 

물론 노아는 의인이고 온전한 자였다. 그러나 노아의 의의 근원은 자기 자신이 아닌 자신과 동행해주시는 하나님과 그의 눈 안에 보여지는 그의 은혜에 대한 확인이었을 것이다(8,9).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였다고 했지만(5:29), 온 땅에 폭력과 부패가 가득한 이유는 사람들의 죄악 때문이었다(11). 사람들의 죄악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창세기 기자가 보여주는 신들의 아들들사람의 딸들을 원하는 대로 아내로 취하는 모습은(2) ‘길가메쉬 서사시의 제일 첫 장에 나오는 반-신적 영웅-왕이 원하는 대로 아내를 취하는 것에 대해 관리들이 불만을 나타내는 기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하나님의 눈 안에서 은혜를 발견하고 그와 동행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들이 신들이 되고, 그런 자들이 원하는 대로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하는, 폭력과 부패에 근거한 사회 속에서, ‘연약한 인간 에노스희생양이 되고, 더 이상 아벨의 핏소리말고는 자기 목소리를 낼 수가 없게 된다.

 

스스로 신이 되었으나,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을 망각한 육체(바사르)’가 되어버린 사람들(3), 이들의 세상에 대해 하나님은 홍수를 계획하신다(7).

 

하루를 살다 가더라도 은혜이다. 이틀을 살다 가더라도 그 또한 은혜이다. 내 것 아닌, 은혜로 주어진 오늘과 내일, 그 날들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 그것은 세상을 위로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탄근심, 그 하나님의 눈 안에 일렁이는 은혜를, 발견하고, 그와 동행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