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1장 - 사귐 (요일 1:1-10)


빛 가운데 행하지만(7)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고(7,8,9),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지만 빛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삶이 지금 하나님과 사귐을 갖고 사는 요한 서신 저자의 삶에 대한 이해이다. 이 삶의 기초는 빛 가운데 사느냐 스스로의 죄를 인식하느냐 어둠 가운데 사느냐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그가 예수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데에 놓여있다(3). 예수께서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여 주었을 때 사귐은 시작되었다(2). 그는 이 사귐을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사귐 가운데서 그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빛 가운데, 오늘을 살고 있음을 느낀다.


예수 믿고 사는 삶은 어떤 대의나 명분이나 구호를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 가운데서 예수와 사귐을 갖고 사는 삶이다. 그 사귐이 빛 가운데 걷게 하고, 그 사귐이 죄에 대한 인식을 낳으며, 그 사귐이 용서를 경험케... 하고, 그 사귐이 신실함과 의로움을 체험하여 알게 하며, 그 사귐이 갈등 속에서도 생명을 누리게 한다.


이 구체적인 사귐 없이 구호만으로도 그럴 듯한 명분들을 걸치고 다니는 삶은 언제고 거짓말을 낳는다. 현실에서의 사랑은 동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둘이 만나서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모든 동화는 끝이 난다. 그러나 현실은 결혼하여 서로 맞춰가는 갈등의 매일이다. 사귐의 오늘 속에 사랑도 있고 생명도 있고 의와 충성도 있다. 사랑과 의와 생명은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구호 속에 있지 않고 내 곁에서 늘 마주치는 가족과 이웃과 불편한 관계들과 휴식 같은 만남들과 반복적이고 ‘비생산적’인 노동과 지치고 여유 없는 사람들과의 쉽지 않은 만남들 가운데 놓여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4:20) 곁에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다른 기질의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바 대의와 명분을 사랑한다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8).


지지부진한 일상에서 그분 예수와 사귀며 사는 삶에서 ‘요한’은 ‘생명’을 경험한다. 그와의 사귐이 생명을 낳고, 생명을 살게 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그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졌던 그를 나 또한 보고 듣고 느끼며, 그와 사귀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