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보고 아버지를 안다 (요 5:1-47)

 

아들을 보면, 아버지가 보인다. 아들이 하는 '말'과 '일'을 보면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알게 된다(36). 아들이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한다면, 아버지 또한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하신다(17). 아들이 죽은 자를 살려 생명을 준다면, 아버지 또한 죽은 자를 살려 생명을 준다(21). 아들이 하는 일, 아들이 하는 역사, 그것이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증언한다(36).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누군가가 아들을 어찌 대하는지를 보면, 그가 아버지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볼 수 있고(40), 누군가가 아들의 말을 어찌 듣는지를 보면, 그가 아버지의 말을 어찌 듣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유대인들,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고 섬긴다는 자들이 오히려 예수를 거부한다. 아니 예수를 죽이고자 한다(18).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이, 아버지를 보여주고 아버지의 일을 하는, 그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다(43). 그렇다면 그들이 공경한다는 하나님은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은 아니다. 그들은 사실 자기를 공경하고, 자기의 영광을 추구할 뿐(44), 모세도 예수도 하나님도 공경하지 않았다(46). 대의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의 뻔한 자기 잇속 챙기기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유대인들 또한 율법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자기 자랑의 근거를 찾았을 뿐, 율법이 증거하는 예수(46), 율법이 보여주는 하나님은 공경하지 않았다.

 

 '자기 백성에게 배척 받는 하나님의 아들'은 오늘날 '교회에서 천대 받는 예수'의 형태로 얼마든지 나타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않고, 서로가 자기의 영광을 취하는 교회, 목사,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에서 멀다. 안식일날 사람을 고치시는 하나님, '일'하시는 하나님, 죽은 자를 살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은 그 곳에서 보이지 않는다. 죽은 우리의 이름을 불러 우리를 살리시기를(25),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던 그 음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