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으면 만날 것이요 (역대상 28장 1절-21절)

2012년 5월 29일 화요일

"네가 만일 그를 찾고 구하면(다라쉬), 그는 너를 만나 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만일 그를 떠나면, 그 또한 너를 버려둘 것이다, 영원히(9)."

언약이란 한 쪽만의 일방적인 약속이 아니라, 쌍방의 약속이다.  

9절 상반절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의 모든 마음들을 찾고 구하신다(다라쉬).

그러니 다윗은 솔로몬에게 명한다. "너 또한 그를 찾고 구하라(다라쉬). 그러면 그를 만날 것이다."

구하고 찾는 두 인격이 만나면 사건이 이루어지고, 사랑이 시작되고, 거처를 함께 하여 함께 사는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떠남은 버려짐을 낳을 것이다.

탕자는 돌이켜야 하고, 아버지는 기다려야 한다. 탕자가 돌아올 때, 달려 나오시는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기다림 없는 돌아옴은 공허하고, 돌아옴 없는 기다림은 헛될 것이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은 남에게 꾐을 받아 떠난 아내를 찾으러 가시는 분이시다.

그는 잃어버린 바 된 죄인들을 찾아 오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그를 찾는 자들이, 자기들을 찾고 찾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은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다윗이 명한다. "경험해라! 내 아들아! 온 마음으로, 네 아비의 하나님을!   섬겨라! 목숨을 다해, 가득한 기쁨을 가지고!"

기쁨!  꽉 채워진(샬렘) 마음!!! -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반드시 누리게될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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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기뻐함, 주를 기쁘게 함 (역대상 29장 1절-19절)

2012년 5월 30일 수요일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믿음이며(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17). 

다윗은 하나님을 기뻐하여 성전을 짓고자 한다(3).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는 다윗이기에 가지고 있는 것 전부를 내 놓아도 아깝지가 않다.

다윗을 따라,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는 자들이, 자신의 것을 기쁘게 내어 놓는다.

 

다윗의 이런 헌신의 뒷면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열망 또한 있다.

다윗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알고 있다(17a).

하나님은 재물 이전에 정직을 기뻐하신다(17a).

하나님이 정직을 기뻐하시는줄 아는 다윗은 정직한 마음으로 자기를 내어놓는다(17b).

 

다윗에게 있는 두 가지 열망,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

이 두 열망이 신앙인의 가장 고상한 열망이며, 가장 깊은 수준의 사랑 표현이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엡5:10)

너희 몸을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산 제물로 드리라(롬12:1)

우리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습니다.(고후5:9)

여러분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 배운대로(살전4:1)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11:6)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열망, 다윗과 바울의 인생을 잡고 움직여간 그 열망이, 나와 우리 교회의 열망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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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키 힘든 부담 Vs 영광의 사명(역대상 29장 20절-30절)

- 2012년 5월 31일 목요일

역대상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성전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솔로몬을 다시금 왕으로 선포하는 장면으로 끝이난다(22).

그날 큰 잔치와 기쁨이 있었다(22a).

 

열왕기상이 보여주는 솔로몬의 등극은 그러나 역대상 본문처럼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핫깃에게서 태어난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여, 요압과 아비아달과 함께 거사를 도모한다(왕상1:5-7).

선지자 나단과 제사장 사독, 그리고 브나야가 노년의 다윗을 재촉하여, 마침내 솔로몬을 왕으로 선포하게 한다(왕상1:8, 33-34).

다윗은 이미 솔로몬을 왕으로 정하였으나, 그의 즉위식을 미루고 있었던 듯하다(왕상 1:27).

그 기회를 틈타 아도니야가 거사를 도모했고, 노숙한 정치인 요압이 그의 편에 선다. 보통 일이 아니다.

다윗은 왜 하나님이 정하신 솔로몬의 왕으로서의 선포를 이토록 늦추었던 것일까?

다윗에게 솔로몬은 태종에게 세종과 같았다. 전쟁을 알지 못하는 연약한 군주가 과연 새롭게 세워진 나라의 군주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있었다. 다윗에게 솔로몬은 아직 어리고 미숙했다(대상 29:1). 미숙했다고 번역된 말은 본래 너무 부드럽다는 말이다.

솔로몬은 문약했다. 그런 솔로몬을 하나님께서 성전을 건축할 자로 지정하셨다. 그에게 왕위를 주셨다.(23)

하나님을 향한 사랑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윗은 솔로몬이 미덥지 않아, 모든 재물을 다 준비했다. 심지어 성전의 모든 설계도까지 그가 친히 다 준비했다. 그리고도 걱정이 있었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문약한 솔로몬에게,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 대 역사는 한편 감당키 힘든 부담일 수 있었다.

과연 어리고 연약한 솔로몬은 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물음을 던지며 역대상은 문을 닫는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제 솔로몬 자신이 해야 할 것이다.

감당키 힘든 부담의 무게에 눌려 스스로 무너져 내릴 것인지, 아니면 영광의 사명인 줄 알고 성실히 감당하여 다윗의 우려를 불식하고 오히려 더욱 영광스러운 통치를 이어갈 것인지, 이는 온전히 솔로몬의 몫이다.

 

그리스도인 - 하나님 나라를 맡은 자들, 우리에게도 이는 한편 감당키 힘든 부담일 수 있으나, 실은 영광의 사명이다.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 각자 자기 삶을 통해 답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