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7) – 마음으로 하는 사랑 (벧전1:22; 마18:35)

 

(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너희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들어가며 - 사랑은 마음에서 시작되고,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감정은 중요한 마음의 부분이지만, 감정이 곧 마음인 것은 아닙니다. 마음은 감정보다 훨씬 크고, 깊습니다. 사실 마음엔 지식, 감정, 의지가 다 포함됩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라’, ‘마음으로부터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마음으로부터 하게 되는 사랑 - 그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고, 행해지며, 유지되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마태복음 18 35절은,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때 중심으로라는 말은 너희의 마음으로부터라는 뜻입니다. ‘마지 못해,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부터 진정으로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용서! - 우리는 어떻게 우리에게 잘못한 형제를 - 마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가 아니라 - 마음으로부터 기꺼이 용서할 수 있을까요? 본문이 속한 문맥(마태18:23-35)이 일만 달란트 용서받은 종에 관한 비유라는 것을 생각하며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의 나를 향한 무한한 용서를 체험한 자는, 자기에게 범죄한 다른 이를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줄까요, 일곱 번까지 할까요?’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여라!”라고 답하십니다. 예수님의 용서에 대한 생각은, 용서하는 자가 관용과 의지로 범죄한 자를 무한히 용서해야 한다는 용서자의 의지에 기반한 용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용서가 필요한 모든 자들 심지어 일만 달란트 빚진 자도 불쌍히 여겨 무한히 용서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자는 다른 이 또한 용서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 곧 용서의 근원을 용서가 필요한 나를 무한히 용서하시는 하나님 경험()에 두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용서와 사랑은 특정한 감정을 만들어 가지거나, 이를 악물고 의지를 세우는 싸움 이전에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내게 주어진 용서와 사랑을 깨닫고 확인하는 하나님 경험()에서 시작됩니다.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을 경험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우리 또한 마음으로부터 사랑과 용서가 차오르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2. 베드로전서 1 22절이 말하는 사랑 -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 거짓 없는 사랑,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 없는 사랑, 마음으로 (뜨겁게) 하는 사랑 - 이런 사랑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을까요? 베드로전서 1 22절에 따르면 이 거짓 없는 사랑은 무엇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자리잡게 되나요?

 

 

-> 우리가 진리를 순종하여 살아가게 되면, 우리 마음이 깨끗하게 되어지고, 거짓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고, 경건하게 살고, 기도하고 살면, 사람의 마음이 넓어지고 여유가 있어집니다.  그 때에 모든 것들이 밝히 보이고, ‘나를 위하여가 아니라, ‘그를 위하여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이 마음으로부터,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거짓 없는 사랑을 요구하며, 그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제시하지만, 그 때에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거짓 없는 사랑이란, 어떤 특정한 감정 상태에서 비롯되는 것이거나, 그런 감정을 만들고자 애쓰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1) 나의 죄를 무한히 용서하시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고 아는 자로서, 이제 (2) 그의 본을 따라 진리를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을 통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면서 마음이 넓어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순종하고 살면서 동시에 삶을 망치고, 시간을 허비하며, 남을 원망하며 살 수도 없습니다. 말씀을 순종하고 살면서 기쁨과 평안과 심령의 낙을 누리지 못할 방법도 없습니다. 진리를 순종하며 살아갈 때, 그리하여 자기 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게 되고, 그것을 뽑고 밝히 보게 될 때, 그 때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은 나의 감정의 문제만도 아니며, 상대방과의 관계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사랑은 무엇보다도 내 삶의 문제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되는 열쇠입니다.

 

 

3.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 그러한 마음으로의 변화란 어디에서 비롯되며, 마음의 변화를 위한 싸움터는 어디일까요? 아래 본문에서 바울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본문에 따르면, 마음을 새롭게 하는 변화는 그런데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열쇠는, ‘그러므로에 놓여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에 근거하여 너희를 권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롬12:1-2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는 권고와 마음의 변화를 받아라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하여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란 로마서 1-11장에서 설명했던 모든 내용을 압축적으로 요약하고 있는 말입니다. 바울은 지금 당신들은 지금까지 저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에 대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인정하며,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에게 요구합니다…. 당신들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리십시오, 당신들의 마음이 변화되도록 허용하십시오!”

   바울은 지금, 우리에게 베풀어진 객관적인 사실들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마음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변화는 어떤 일시적인 감정이거나, 부흥회하고, 기도회 하여 나 울었어, 나 은혜 받았어하는 등의 일시적인 마음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사실에 대한 믿음과 경험, 곧 앎에 기초하여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말씀이 보여주듯, 이러한 마음의 변화는 내가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마음을 변형시키시는 것을 수용하고 허용하는 것을 통해서 수동적으로 이루어 집니다. 여기서 수동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바꿔줄 때 까지 넉 놓고 기다리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요? 마음의 변화를 수용하는 우리 쪽에서의 할 일은 무엇일까요?

   

->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확인하고, 그것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 때 우리 마음은 변화를 받게 됩니다. 용서를 경험하게 되고, 치유 받게 되고 그리하여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평강을 얻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수동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상호적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면 갈 수록,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 안에 더욱 풍성하게 부어지게 되고, 그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은 건강해지고, 사랑과 평강을 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건강함과 평강과 사랑이 아니기에 수동적이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간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상호적입니다. 사랑은 내 감정의 문제만도 아니며, 상대방과의 관계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사랑은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의 문제이며,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얼마나 채워져 있는지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