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센트에 담긴 마음 (누가복음 20장 41절~21장 4절)

2012년 3월 26일 월요일 묵상

사람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일 뿐, 그 마음이 어떤지는 사실 알 수 없다.

오죽하면,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을 가꾸고 꾸미기보다, 겉모습을 가꾸고 꾸미게 되나 보다.

 

유대 지도자들의 눈에 예수는 진짜 메시야로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가진 외적 조건이 다윗의 자손 - 메시야의 모습에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메시야는 그들이 생각하던 다윗의 후손의 모습을 무한히 넘어 서 있는 존재였다(20:41-44).

메시야 예수는 다윗의 자손이기 보다, 다윗의 주였다(44). 하지만 저들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나 다윗의 주,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과부의 마음을 알아 주셨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모든 사람들이 부자들의 많은 헌금과 서기관들의 긴 옷에 현혼되어 있을 그 때,

예수님은 보이는 것 너머에 놓인, 진심을 헤아리셨다. 50센트(두 렙돈)에 담긴 과부의 생명같은 고백의 무게를 알아 주셨다.

그는 나의 마음도 알아 주실 것이다. 그 알아 주심이 감격이 될지, 그 아심이 두려움이 될지... 마음의 무게를 더하는 하루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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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로 영혼을 얻으라 (누가복음 21장 5절-19절)

2012년 3월 27일 화요일 묵상

아무리 아름다운 돌로 지어진 성전도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5).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져 내릴 때까지(6), 이제 약 40년의 시간이 저들 앞에 놓여 있다. (A.D. 27/8년~A.D. 70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46년 동안이나 지어온 성전(요2:20)인데, 40년 후에 무너질 것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회당과 옥에 넘겨주고, 이방 권력자를 통해 저들을 박해하면서, 유대인들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헤롯 성전은 63년까지 지어졌으니, 어쩌면 베드로나 바울이 순교한(62년?) 이후에도 성전은 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채 7년도 못되어 헤롯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져 내릴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손으로 지은 성전도 무너지고, 우리 장막 집도 무너질 것이다.

 

이제 마흔이 되었느니, 내게도 약 40년 정도의 시간이 놓여 있다.

스스로 자랑 삼던 의뢰가 무엇이건 40년 쯤 후면 다 부질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을 것, 무너지지 않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예수의 이름을 위해(17) 인내로 생을 살아낸 자들의 영혼이다(19).  

 

"너희의 인내로 너희의 영혼을 가지라!(19)" 

"여행을 위해 전대도, 베낭도, 두 벌 옷과 신도 가지지 말라"(마10:9-10)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가져야 할 것과 가지지 말아야 할 것,

무너지고 말 것과 무너지지 않을 것,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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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곧게 펴고 일어나 고개를 들라는 싸인 (누가복음 21장 20절~28절)

2012년 3월 28일 수요일 묵상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20), 해와 달과 별들의 싸인들을 보거든(25a),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사람들이 혼란 중에 곤고한 것을 보거든(25b), 하나님의 의의 심판이 임박한 줄 알라(22). 또한 너희의 구원이 가까운 줄  알라(28).  그 때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자들은 속히 성을 떠나 산으로 피해야 한다.(-롯을 기억하라!). 성 밖에 있는 자들이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21). 그 성은 무너질 것이다. 기록된 모든 율법을 따라 의의 심판이 완전히 임할 것이다(22). 그러나 그 징조들은 구원의 때가 가까왔다는 싸인이기도 하다(28).  예루살렘이 둘러싸인 67-70년, 성전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70년. 이후 복음은 온 땅을 향해 뻗어 갔고, 이후 50년, 회당이 있던 거의 모든 지중해 지역에  교회가 섰다.

 

초록색 불은 출발하라는 신호이다. 성전의 붕괴와 예루살렘의 멸망은 허리를 곧게 펴고 일어나 고개를 들라는 신호이다.

무너져야 할 것에 소망을 두고 살지 않았다면, 성 안에서의 삶에 자기의 모든 인생을 걸지 않았다면, 구름 타고 오실 인자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았다면,

많은 이들이 혼란과 곤고 중에 불안해 할 때에 오히려 소망 중에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불안한 자들에게 기댈 곳이 되고, 절망한 자들에게 소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호는 이미 들어왔다. 일어나자. 굳게 서서 허리에 띠를 동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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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자의 하루 (누가복음 21장 29절~38절)

2012년 3월 29일 목요일 묵상

술취함과 방탕, 생활의 염려는 마음을 질식케 한다(34).

염려로 사는 사람은 좀처럼 염려하기를 멈출 수 없다. 기쁜 일, 좋은 일이 생겨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한다.

기쁜 일이 곧 불평의 이유가 되고, 염려의 주제가 된다. 염려함으로 키를 한 뼘도 늘이지 못하면서, 염려를 버리면 불안해진다. 염려는 늪이다.

술취함과 방탕도 마찬가지다. 술취함과 방탕은 중독된다. 그 안에 발을 들여 놓은 자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마시고자 살고, 마시지 않고자 싸우다 마음의 온 에너지를 다 사용한다. 마비된 마음은 길을 잃고 스스로를 태우며 소진된다.

그러니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34). 스스로 자신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말씀으로 마음을 먹이고(33.38), 기도로 마음에 안식을 주어야 한다.(36-37). 

지난 일요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목요일밤 잡히시기까지 매일(!) 낮에는 성전에 올라가 말씀을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산에서 기도하셨다(37:눅 22:39).  십자가를 앞두고도 그의 삶은 한결 같았다. 잡히시던 마지막 밤 그가 마지막으로 하신 일은 다름 아닌 기도였다(22:44).

염려에 마음을 빼앗기고, 방탕으로 마음을 소진하지 않기 위해 기도함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눈에 보이는 천지보다, 그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 참된 현실임(33)을 내 마음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