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말, 말 (요 7:1-52)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다. 감추어진 것에 비해 겉으로 드러난 부분이 지극히 작다는 뜻이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뿐 아니라 사실 모든 말들은 드러난 부분보다 감추어진 부분이 훨씬 더 거대하다.

 

예수의 형제들이 예수께 권고한다. 다가오는 초막절 명절에 유대로 올라가 자신을 드러내라고...(3-4).

액면 그대로 보면 이 말은 본격적인 사역에 대한 권고와 독려로 보인다.

하지만 요한복음 저자는 그들의 드러난 말 배후에 놓인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보여준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5)

 

형제들에게 예수가 대답한다.

"나의 때가 아직 차지 않았으니, 나는 이 명절에 올라가지 않겠노라"(8)

하지만 이후 예수는 은밀히 유대 땅에 올라간다(10). 명절 중간이 되었을 때 예수는 성전에서 가르친다(14).

거짓말을 한 것인가?

 

말은 단지 입에서 나오는 말만이 말이 아니다. 행동 또한 말이다. 사람은 때로 행동으로 더 많이 말하며, 더 진실하게 말한다(17).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않겠다'는 것도 말이고,  '명절 중간에 자기를 나타낸' 행동 또한 말이다.

'드러난 말'과 '드러난 행동' 사이에는 '감추어진 말'이 놓여 있다.

'나의 때', '너희의 때', '때가 참', '때가 이르지 않음' 등이 이런 감추어진 말이다.

 

어린 아이는 철자를 배우고, 읽고 쓰기를 배우고, 단어를 배우고, 문장을 배운다.

어른이 되어서야 문장을 쓰고 배열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을 배운다.

 

'행간'이라는 말이 있다. 드러난 말들 사이에 놓인 감추어진 말들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행간을 읽는다는 말이다.  사람은 어른이 되면서 감추인 말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해석하고 이해하며 또한 해석되고 이해된다. 

 

유대인들 또한 예수의 드러난 행동과 말들을 가지고 그 행간을 더듬고 있었다(12).

감추인 말들을 찾고, 그의 숨겨진 정체를 찾아 해석을 시도한다.

그러한 행간을 읽는 것을 방해하는 또는 지배하는 중요한 정서가 있다.  '두려움'과(13) '자기 위안'이다(18).

 

해석이란 행간에 감추어진 누군가의 말들을 길어 올리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자기 말로 행간을 채워놓고는 그것이 상대방이라 판단한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읽었고, 모세의 행간을 두려움과 자기 위안으로 채웠다. 그들은 '겉 모습' 곧 '드러난 말'만을 보았다(24).

 

행간을 바로 읽게 하는 정서가 있다. 그것은 '사람의 전신을 건강하게 하려는 마음'(23) 곧 '의로운' 마음이다(24).

'의로운' 마음이란 '관계를 지켜내려는' 마음이다. 상대방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다.

할례를 행하는 것은 사람을 잘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잘라내지 않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다(22).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를 도발한다. 도발의 배후에 놓인 정서는 불안이다.

형제들(동생들)의 도발에 예수는 대답한다. "이 명절에 나는 올라가지 않으련다. 아직 나의 때가 차지 않았다. 하지만 너희들의 때는 이미 충분히 여물었다(6). 그러니 너희는 올라가라....(8)." 예수는 말로 그들의 불안을 만져주고 그들을 세워준다. 그러나 자기의 길 또한 포기 하지 않을 것임을 형제들에게 밝힌다. 내 때는 '아직' 다 차지 않았다....(6).

 

예수의 드러난 말과 드러난 행동들의 행간을 읽는 자들의 해석과 논쟁이 계속된다(31, 35,40-44,45-52).

바리새인들의 입에서 '저주'가 흘러나오는 사이(49),

또 다른 바리새인 니고데모의 입에서는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51)는 '말'이 나온다. 

 

말, 말, 말  - 드러난 말, 드러난 행동(말), 감추인 말... 

전신을 건강하게 하려는 마음(23), 의로운 마음으로(24), 행간을 채우는 어른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