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9장 - 마음이 속에서 타는구나 (욥 19:1-29)


친구들이 욥의 고통을 욥의 몫으로 정해 놓고, 그를 그의 고통 속에 떠밀어 버린다. 멀리서 찾아온 친구조차 욥의 손을 잡아 주지 않는다면 누가 있어 그의 곁을 지켜줄까?(13-19). 어디 친구뿐이랴, 형제들과 친척들이 그를 버렸고, 낯선 자를 대하듯 그를 대한다(13,14,15). 살가죽만 겨우 남은 낯선 몸처럼 그를 아는 친한 이가 그의 곁에 없다(20).


아니다. 아직 그의 곁에 그를 낯설어 하지 않는 자가 있다. 죄지었다며 그를 외면하거나 모른 채 하지 않는 이가 한 분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입을 닫고 관계를 끊어버리지 않는 이가 한 분 있다. 사면으로 그를 헐고(10), 그 그물로 그를 에워싸고 있는 이가 한 분 있다(6). 하나님, 바로 그분이다.


“25. 내가 알고 있다. 나의 구속자(‘고엘‘)가 살아계심을.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설 것이다. 26. 내 살갗이 다 벗겨진 후에(라도) 내 몸에서 내가 하나님을 볼 것이다. 27. 내가 나를 위하여 볼 것이다, 나의 눈이 볼 것이다, 낯선 자가 아니라... 마음이 속에서 타는구나.“


친구도 친척도 곁을 떠났지만, 그의 ‘기업 무를 자(구속자)‘(고엘)가 아직 그의 곁에 계시다(25). 산자와 죽은 자를 위해 땅과 자손을 회복시켜 생명을 되살리는 ‘기업 무르는 자‘와 같이(cf.룻2:20;4:5,15), 뼈에 붙은 살갗조차 다 벗겨져 죽은 몸이 될지라도(26), 지금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 그의 가장 가까운 피붙이 살붙이가 되어 그를 회복시키고야 말 것이다. 고통 속에서 그에게 너무도 낯익은, 그분 손과 그분 낯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신을 벗고 발을 빼내지 않으실 것이다. '내가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다... 아, 마음이 속에서 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