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7장 – 쳐다볼 수 없는 빛 ?(욥 37:1-24)


하늘의 번개와 천둥, 비와 바람, 구름과 햇빛 – 사람이 예측하거나 원리를 찾아 낸다 할지라도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자연적 현상들, 그 중에서도 사람이 매일같이 겪게 되는 날씨를 빚어내는 주역들, 천둥 번개가 빚어내는 두려움을 넘어 비와 바람이 가져다 주는 풍요와 재앙 그리고 구름과 햇볕이 빚어내는 경이로움까지... 엘리후가 욥에게 겸손을 말하며 들이미는 것들, 그 앞에 누가 경외감과 더불어 겸손함을 품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그렇기에 욥은 다만 입을 다물고(19) 자신의 아둔함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인가?(20)


스쳐 지나치려 했던 작은 나무에 달린 꽃을 보며 활짝 웃는 딸 아이와 함께 유치원에 가는 길, 아직 떠나지 못한 이슬과 쉽사리 마주 쳐다볼 수 없는 햇빛, 여기 저기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청량함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시작의 아침... 선물처럼 배달되는 ...매일 매일...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마주침 앞에서 그러니 우리는 다만 겸손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애써 곡조를 찾지 않아도 흘러 나오는 노래가 입가에 맴도는 오늘이나 탄식이 새어 나오는 고통의 오늘도 신비는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하지 않는다.


마주하여 쳐다볼 수 없다 해도 햇살은 풀 잎새에도 머물고 감은 내 눈에도 머물러 말하게 한다. 어디 좋은 날만 있으랴? 두려움과 떨림으로 잔뜩 웅크린 날이 왜 없으랴? 좋은 날에는 노래하고 슬픈 날에는 탄식함이 마땅하지 아니한가? 이치를 모르니 놀라고, 놀라니 말한다. 노래하고 탄식하고 분노하고 묵상한다. 이치를 알더라도 생명을 낳을 뿐 만들 수 없으며, 오늘을 맞이할 뿐 지어 펼쳐 놓을 수 없지만 그러니 말하고 반응하고 궁구하며 움직인다.


폭풍우 가운데서 나타나신 하나님은 욥에게 대답하여 말하라 하신다(39:3;40:2,7). 하나님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던 욥은 그러나 침묵하는 대신 오히려 하나님께 말한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42:4). 그러자 하나님이 말한다. “내 종 욥의 말이 너희 보다 옳도다“(42:7).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