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50> 마태 12제사가 아닌 자비 (2010-04-14)

 

/악 판단을 자기 몫으로 취해가진 이후, 인간은 선/악 판단을 가지고 자신은 판단하지 않고, 오직 타인만을 판단한다. 아무도 선/악 판단을 따라서 의로울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으로, 재판장의 지위에 자신을 세우는 것으로, 스스로 의인의 옷을 걸치는 것이다.

 

제사란 타자를 나 대신 죽여 자기의 죄를 덮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타인에 대한 심판을 통해 자신의 죄를 가리려는 인간의 시도와 닮은 부분이 있다. 물론 제사란 본래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죄 없는 제물을 자신 대신 죽이는 것으로 죄를 속하고, 의를 회복하는 것이니, 타인에 대한 심판을 통해 자기 의를 붙잡고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타자를 죽여 자기가 산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형식을 갖는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닌 자비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이 말뜻을 이해한다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않았으리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자기 제자들에 대한 정죄를 제사와 같은 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규정하신다. 물론 이 때 제사, 자기의 죄를 통한이 여기며, 죄 없는 타자가 자기를 위해 죽음으로 자기 죄 값을 담당케 하는, 그리하여 타자의 희생 없이 결코 를 얻을 수 없는 자신을 확인케 하는 본래의 의미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제사란 무엇보다도 자기의 죄에 대한 자각 없이, 타자를 죄인으로 만들어 그에게 죄를 정하여 죽이는 것으로 스스로 의 옷을 입고자 하는 사람들의 정신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를 원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기를 원한다. 여기서 자비란, 히브리말로 헤세드, '인애' 곧 '이다. ‚란 관계에 충실함이다. 의란 타자에 대한 자기의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는 것이다. 죄인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은 그런 의미에서 의롭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종으로 오신 예수는 이 를 행하시는 분으로 여기 우리 가운데 있다.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나의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공의(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여, 소리치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그가 공의(심판)‘를 승리로 이끌 때까지 하리라. 또한 이방인들이 그 이름에 소망을 두리라.“

 

이것이 제사가 아닌 자비다. ‚공의를 이방에 알게 하는데, 다투거나, 소리치거나 하지 않는다. 정죄하거나 심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다하나님은 이것을 원하신다. 타인을 죽이는 심판이 아니라, 타인을 기다려 주며, 묵묵히 감당하여 다시 살게 하는 것을 원하신다.

내 안에 의가 없으면 타인을 정죄하고, 타인을 내 제사 제물로 삼게 된다. 내가 '롭고,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순간, 타인이 죽게 된다. 그게 제사다. 그러나 내가 소리내지 않고, 내 의를 주장하지 않고, 견뎌주고, 짐을 져주고, 타인을 '롭게 만들고자 하면, 타인이 살게 된다. 그것이 자비다.

여전히 내 안에도, 나의 정당함과 옳음을 증명하고 싶은 욕망이 튀어나온다. 그럴 때마다, 타인이 죽어간다.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타인을 옳은 자로 세우고, 내 입을 막을 때, 타인이 산다. 그리고 내가 산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