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고난주간 묵상(목요일) - 누가복음 22장 33-34, 39-62절

번민, 간절함, 무릎, 슬픔, 핏방울처럼 떨어졌던 땀방울 그리고 통곡의 눈물.
목요일인 오늘 밤, 밤의 겟세마네에서, 새벽녘 대제사장의 안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하게 됩니다.

칼과 몽둥이로 그를 잡으러 온 자들에게 잡혀 예수님은 죄인처럼 끌려가셨고,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지난 3년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았던 제자들에게, 그 밤은, 모든 기대가 무너져 내리고, 모든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주와 함께 죽겠다는 맹세’는 조용히 자신을 포승 줄에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뒷모습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예수님의 결심은 떠나가는 제자들의 결심처럼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던 제자 유다가 입맞춤으로 자기를 팔러 온 그 밤,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말씀을 가르치던 때가 아닌 밤을 틈타 음모와 배신의 손에 들려진 칼과 몽둥이로 자기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의 비열함 앞에서도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셨고, 예수님은 그 때에도 자기를 헤치러 온 자의 상처를 고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유다의 배신에도, 제자들의 도망에도, 베드로의 부인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밤을 하나님 앞에서 자기와 싸우며 보낸 기도의 시간 때문이었습니다.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오른 것은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온 첫날부터 오늘까지, 그는 매일 그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택할 때에도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을 오르셨고,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치유하고 자기를 위한 시간을 거의 낼 수 없었을 때에도 그는 한적한 곳을 찾아 새벽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그의 기도는 자기의 요구를 들어 달라는 떼씀이나, 하나님의 뜻을 알려만 달라는 교묘한 변명도 아니었으며, 자기의 연약함을 이해해 달라는 타협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와의 피나는 싸움이었고,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이겨 낼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무릎 꿇음 이었으며, 눈물과 피와 땀으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고통스런 전쟁이었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우리가 자주 흉내 내어 드리는 이 기도는 웃으며 따라 할 수 있는 낭만적인 고백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더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그의 하나님의 아들다운 담대함과 여유, 사랑과 헌신, 희생과 평안, 오래 참음과 온유, 이 것들 중 그 어떤 것도 기도 없이 그의 것인 것은 없었습니다.
권세자들 앞에서의 담대함, 그들의 비열함 앞에 분노에 사로잡혀 보복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
자기를 버리고 떠나는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
자기를 잡으러 온 자의 상처를 오히려 치유하시는 것,
천군 천사를 동원할 수 있는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포기하고, 거짓으로 자신을 모함하고 있는 자들을 위해 오히려 십자가를 지는 것,
자신의 눈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베드로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것,
이것 들 중 그 어떤 것들도 번민과 간절함과 땀과 핏방울과, 눈물과 무릎 없이 그의 것인 것은 없었습니다.

예수의 눈 앞에서 그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통곡을 단 한번이라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의 이 기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지 못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결심하나, 결심만으로 만족하곤 합니다. 매일 같이 우리 안에서 올라오는 좌절된 욕망의 요구들, 상처받은 자존심의 칭얼거림, 질기고도 질긴 육체의 관성 같은 요구들, 무시당한 마음을 사로잡는 분노들, 이 모든 것들로 인해 우리는 많은 시험 가운데로 스스로 이끌려지고,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그 시험에 굴복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언제 베드로처럼 통곡했던가요?

우리는 예수님처럼 기도도 하지 않고, 베드로처럼 통곡도 하지 않은 채,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기도를 통해 변명합니다. 십자가를 향해 흔들림 없이 걸어가신 예수님의 등짝에 매달려 예수님 등판이 불편하다고 칭얼대는 눈물은 있어도, 예수님의 눈에 일렁이는 눈물을 마주하고 밖으로 뛰쳐나가 통곡하는 눈물은 마른지 오랩니다.

고난 주간, 과연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기도한 적이 있었는지, 단 한시라도 예수님처럼 기도한 적이 있었는지, 단 하루 밤이라도 무릎으로, 간절함으로, 눈물로, 핏방울로, 자신 욕망과 대접 받고자 하는 자존심과 싸워본 적이 있었는지 돌이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단 한 시간이라도, 단 하룻밤이라도, 예수님을 따라, 아버지 나의 원대로가 아니라 당신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는 고백이 내 온 삶의 고백이 되기까지 싸우며 기도하는 그의 제자들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