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장 – 아들의 자유와 사랑 (마17:24-27)

랍비 문헌에, 한 세상 임금이 길을 가다가, 세관에 앉은 세리를 보고, 신하에게 명하여 세금을 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하가 놀라며 말린다. "임금님이 왜 세금을 내십니까? 그럴 필요가 없는데요?" - "맞다. 하지만, 내가 내는 것을 통해서 임금님도 세금을 낸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면, 더욱 더 세금을 내지 않겠느냐?" - 그러면서 세금을 낸다. 이건 일종의 통치술이고, 정치다.

성전세를 내시면서 예수님이 하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성전세는 일년에 한 번 낸다. 반 세겔, 두 드라크마, 그러니 이틀 치 일당이다.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런데 그 짐을 다른 누군가가 실족하지 않기 위해 감당해 주고 있는 것이다(27). ...

이스라엘의 성전은 70년에 티투스에 의해 완전히 무너진다. 예수님 사후 40년이다. 마태복음은 아마 70년 이후에 쓰여졌다. 성전 파괴 그 이후다. 이제 더 이상 성전은 없다. 그럼에도 마태는 이 내용을 기록한다. 왜? - 의무에 매이지 않고 사랑에 매인 자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그들에게 주라"(27)

본문은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끝이 난다. 베드로가 어떻게 했다는 말이 없고, 다만 나가서 그렇게 하라는 말씀으로 끝이 난다. 베드로는 이렇게 했을까? 했을 것이다. 정말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얻었을까? 의무가 아닌 일을 사랑으로서 감당하기 위해 그 일을 해본 사람만이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베드로에 대한 예수의 이 짧은 말에 고기를 잡아 입에서 동전을 발견하기까지 5개의 동사가 사용되고(가서, 던져서, 끌어 올려서, 입을 벌려서, 발견하여라) 2개의 동사가 이어진다(그것을 취하여, 주어라). 어부가 직업인 베드로로서, 지금 이 일은 노동과 기적의 아주 애매한 경계쯤에 놓인다. 이게 노동인지, 기적인지 구분하기가 애매하다. 하지만 의무가 아닌 일을 짐 지고자 사랑의 노동에 참여한 자 스스로는 알 것이다. 이것이 노동일뿐 아니라 또한 기적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