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한 일 (눅 6:1-11)

                                                                                                                                                                                                          2012년 2월 3일 QT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사람 목숨을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 중 어떤 것이 '합당한 일' 인가?(9)

말 할 것도 없이, 사람 목숨을 살리는 선한 일이 '합당'하고 마땅하다. 더욱이 창조의 완성인 안실일에야 오죽하랴?

그럼에도 예수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시는 이유는, 사람 목숨을 죽이고자 '엿보는' 사람들(6)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중 국어 사전을 찾아본다. '엿보다'는 말은 1. 남몰래 대상을 살펴보다. 2. 미루어 짐작으로 알다. 3. 때를 노린다 라는 뜻이다. 기막힌 번역어다.  바리새인들은 의도를 숨기고 예수의 행실을 살펴본다, 그들의 '생각'(8)을 따라 예수에 대해 추론한다, 마침내 그를 고발할(7) 때를 노린다. 고발, 고소에 대한 헬라말은' 카테고레인' 이다. 카테고리(범주)를 짓는 일이 고소, 고발, 정죄란다.

카테고리를 짓는 일, 곧 겪어 본 적도 없으면서 누군가를 '어떻다'고 규정하는 일이 사람 목숨을 죽이는 일이란다. 살아 있는 사람의 손을 '손 마르게'하는(10) 일이란다.   '합당한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합당한 일이다. '합당하지 않은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죽이고 손 마르게 하고, 사람 목숨을 범주 속에 가두어 두고, 압정을 박아 꼼짝 못하게 하는 일, 규정, 엿봄, 추측, 때를 노림...이 합당하지 않은 일이다. 쉼을 통해 모든 '목숨'이 생명을 생명답게 누리며 살라고 주어진 안식일에.... 더 말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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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의, 가난한 자들에 의한,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 (눅 6:12-26)

                                                                                                                                                                                                      2012년 2월 4일 QT

'이 때에' 예수께서 밤새 기도하신 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 중 특별히 12명을 선택하여, '사도'로 세우신다.

'이 때에'란 어부들을 제자로 부른 이후, 나병 환자와 중풍병자를 고치고, 레위를 부르고,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하던 날들을 뜻한다.

역설의 복음, 잔치 자리의 새포도주 같은 복음을 전하며,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죽은 문자로 산 사람까지 잡곤 했던 바리새인들과

부딛히는 날들을 지나면서 예수님은 12제자를 선택하여 세우신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평지 강화'를 선포하신다.

 

마태는 산상수훈 이후 10가지 기적을 기록하고, 그 후 12사도를 세우고, 그들을 이스라엘 각 지역으로 파송한다.

누가는 '가난한 자들에게 전해지는 복음'을 여러 모양으로 기술 한 후, 12 사도를 따로 세우고, 그 제자들에게 특별히 평지 강화를 말씀하신다.

 

누가에서 12 사도는 온 땅에서 온(17) 병든 자, 고난 받는 자, 귀신에 눌린 자들을(18) 위해 세워진다. 그 후 선포되는 평지강화는 제자들의 정체와 사명에 대한 제자도가 된다(20). 누가에서 제자들은 무리와 구분 되지 않고, 바리새인들 율법학자들과 구분된다. 제자들은 복음이 필요한 가난한 무리들과 동일시 된다. 아니 동일한 자들로 살아갈 것이 요구된다. 가난한 자(20), 주린 자 우는 자(21), 욕을 먹고 '악하다'는 소리를 듣는 자들이 복이 있다(22). 누가 이런 자들인가? 바로 예수 곁에 모여 온 가난한 사람들이다. 바리새인들에 의해 '죄인들'이라고, '악하다'고 정죄 되었던 자들이 그들이다(5:30).


 사람들은 부와 배부름과 편안함을 꿈꾼다. 예수의 제...자들도 어쩌면 그 꿈을 꾸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는 12명을 '사도'를 세우면서, 그들에게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서 그들 자신 가난하고, 고통하고, 억눌린 자로서 살아가라 당부하신다. 그 자리를 떠나는 순간, 그들은 바리새인이 될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악하다 하고, 병든 자들을 죄있다 하고, 손 마른 자들에게 손 펴는 것이 불법이라 할 것이다.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부와 배부름과 칭찬과 편안과 자기 만족에 젖는 순간, 그들에게서 선포되는 복음은 더 이상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이 아닌, 자기 만족을 위한 '자위적' 복음이 될 것이다.


 예수에게서 나오는 능력은 부와 배부름과 편안이 만들어 낸 능력이 아니라, 지난 밤 내내 하나님과 함께 했던 기도에서 나오는 능력 이었다(12). 나는 어디서 능력을 찾으며, 누구를 위한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가? 주일을 맞으며 스스로 묻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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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됫박에 담긴 마음 만큼...(눅 6:27-38)

                                                                                                                                                                                                 2012년 2월 5일 QT

사랑해라, 선대해라, 축복해라, 위해 기도해라, 주라, 대접해라, 자비로워라, 비판하지 말아라, 정죄하지 말아라, 용서해라, 넘치도록 주어라.

누구에게? - 원수에게, 너를 미워하는 자에게, 저주하고 모욕하는 자에게,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그리하면 - 너도 비판과 정죄로 다뤄지지 않을 것이다(37). 너 또한 용서 받을 것이다(37). 그자들이 너에게 넘치도록 돌려 줄 것이다.(38)


 마태의 팔복은 3인칭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누가의 평지강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2인칭이다. 너, 너희... 평지강화에서 예수님 설교의 대상은 말 그대로 가난한 자들이다. 상처 입은 자들이다. 그들...에게 너희가 먼저 주는 일을 시작하라고 하신다. 너희가 먼저 축복하라고 하신다. 너희가 먼저 용서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그들도 너희에게 그리 할 것이라 하신다(38). 이 말은 이렇게 들린다. '원수, 미움을 품고 있는 자, 누군가를 저주하고 모욕하는 자, 누군가의 뺨을 치는 자, 빼앗는 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죄와 심판의 선언이 아닌, 용서와 자비, 복을 빌어 줌, 믿어 줌, 존중이다'라고... '대접'이 필요한 자들로서, 그리하여 그들 또한 평지강화의 '너희' 안에 서게 된다.  


 "네가 되어 주는 그 됫박에 담긴 마음 만큼, 너 또한 다른 이들의 마음이 담겨진 됫박을 받게 될 것이다."(38)... 네가 사랑으로 담아 주면, 상대 또한 네게 사랑으로 담아 줄 것이다. 네가 흔들어 넘치도록 담아 주면, 그들 또한 너에게 그렇게 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사실이지 '가난하다'. 대접, 용서, 용납, 기다려줌, 자비, 선대, 축복, 사랑이 필요하다. 서로 할퀴고 상처 주고, 서로 분노하고, 저주하고, 모욕하고, 마침내 뺨을 때리고, 빼앗는 것은 그가 마땅히 받아야 했던 대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죄인'이라 선언하는 기독교 복음의 한 가운데서, 그 '죄인'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소리가 아닌, 그를 믿고, 축복하고, 대접하고,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