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3장 – 아브라함에게서 보이는 것 (창 23:1-20)


127세를 살고 사라가 죽는다(1). 태어나서 자란 곳이 어디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디서 죽어 어디에 묻힐 것이냐도 그만큼 중요하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가나안 땅에 매장하려 한다. 이삭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자기 종을 고향 친척 땅으로 보낸 아브라함이건만 사라는 땅을 사서까지 가나안 땅, 자신이 가장 오랜 동안 살아온 헤브론 땅에 매장하려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은 가치의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선택은 하나님 편에 서는 순종의 문제다. 더 좋은 것, 더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부름 편에 자기 인생을 놓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약속 편에 서서 약속을 소망하며 산다.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의 이루어짐을 소망하며 산다. 그 결과 아브라함을 만나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지혜와 관대함과 능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인생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6).


헷사람이 아브라함을 향하여 말한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입니다.“(6). 아브라함은 이런 이야기를 그의 나이 137세가 되어서나 들었던 것이 아니다. 이삭이 태어나고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점에서 블레셋 지역의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화친의 언약을 맺으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21:22)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은 물론 존경 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서 사람들이 보는 것은 다만 그의 관용과 넉넉함과 양보와 부유함과 지혜와 신실함이 아니다.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서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지난 수십년 하나님의 아브라함 동행이 빚어낸 결과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동행이고, 이제 137세가 된 아브라함에게선 하나님이 보인다. 아비멜렉이나 헷 사람조차도 아브라함에게서 그의 하나님을 본다. "네가 나를 보고도 아버지를 보지 못했느냐?"물으시는 예수님처럼 나도 그렇게 반문할 수 있는 삶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