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5장 4절

Blessed are those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마카리오이 호이 펜쑨테스 호티 아우토이 파라클레쎄쏜타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예루살렘 성이 내려다보이는 감람산 중턱에 세워진 눈물교회의 창문은 가시 면류관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성전을 향해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옵니다. 지붕의 네 귀퉁이를 장식하는 작은 항아리들은 예수님의 눈물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미래를 예견하시면서 우셨던 모습을 누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찌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눈물의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져 폐허로 된 자리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쫓겨난 사이에 주후 7세기 아랍 무슬림들이 들어와 황금 사원을 세워 메카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 회교 성지로 만들고는 1300년이 지난 오늘까지 하루에 다섯 번씩 “알라후 아크바르”-번역하면 알라는 위대하다며 메카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회교도들로 인해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마음이 메어집니다.
게다가 성전을 자유롭게 드나들던 유대인들은 성전자리를 이방인에게 빼앗긴 채 서쪽 성벽 한 모퉁이 로마의 티토 장군이 미래의 교훈으로 남겨놓은 일명 통곡의 성벽을 성지삼아 위안을 삼고 있는 모습에서 그들의 가련함을 보게 됩니다.

오늘 설교의 주안점은 애통한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있습니다.

성경을 찾아보니까 여러 곳에서 “눈물 모티브”가 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시편과 이사야가 눈물 모티브를 많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1. 시편 6편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본 시는 주께 매를 맞아 아플 때 울며 주의 긍휼을 구하는 탄원의 시입니다.


2. 30편 4-5절, 11절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고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본 시는 울고 난 뒤 찾아온 회복을 감사하는 시입니다.


3. 69편 29-30절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본 시는 가난하고 슬픈 상황이지만 주의 구원을 바라보며 주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4. 126편 5-6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현재는 눈물로 씨를 뿌리지만 결국 기쁨의 단을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된다는 주제를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1. 25장 6-8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주된 메시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눈물을 씻으시는 분이시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2. 30장 19절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시온의 눈물을 씻기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보이는 예언 시입니다.

3. 35장 10절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복역의 때가 끝나고 회복의 기쁨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4. 51장 11절
여호와께서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 나리이다.

35장과 같은 어조로 노래하는 예언의 시입니다.

5. 57장 15절, 18절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 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위로는 오직 지존하신 분으로부터 옴을 강조합니다.

6. 66장 10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예루살렘을 위해 우는 자들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보게 될 것을 예언하는 시입니다.

신약에서 애통의 눈물의 예는

첫째, 옥합을 깬 여인의 눈물입니다.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7장 37-38절)
이 여인은 과거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통회하는 심정으로 예수님의 발 앞에서 울고 있습니다. 회개의 눈물은 향유의 향기로움과 조화를 이루며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습니다.

둘째, 세리의 눈물입니다.

세리는 멀리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복음 18장 13절)
세리의 눈물은 예배 자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될 자세를 잘 보여줍니다.

구약에서 좋은 예는 병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 왕이 흘린 눈물입니다.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을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 행하리이다.
주여 사람이 사는 것도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 있사오니
원컨대 나를 치료 하옵시며 나를 살려주옵소서.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 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가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이사야 38장 14-19절)

인생의 절대 위기에서 눈물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 고난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40여 일간 마지막 부활을 향하여 계속되는 이 기간동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되새기기를 원합니다.
눈물이 나를 위해 흘리는 눈물도 있지만 주님을 바라보며 흘리는 눈물도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2장 10절)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도 주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광야에서 그는 예수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길을 곧게 하라.
외치는 자의 소리를 헬라어 성경은 φωνη βοωντος εν τω ερημω라고 번역합니다.
여기서 βοωντος는 분사로 동사 βοαω에서 나왔는데 그 뜻은 “큰소리로 선포하다, 크게 울다” 입니다. 유사 단어 βους는 “황소”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βοωνης는 “이 황소를 희생제사를 위해 끌고 가는 관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ερημω는 ερημια에서 나왔는데 그 뜻은 “고독한 사막, 광야”입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세례 요한의 대한 묘사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황량하고 고독한 곳에서 큰 소리로 울고 있는 황소의 울음 같은 소리여”,
또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광야의 아사셀 염소로 나아가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울고 있는 소리여”

복음 전도자 바울은 눈물의 유익함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장 3-5절)

성경은 눈물 없는 세상의 도래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께서 임하실 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61장 1-3절)

둘째는 파루시아-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입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요한 계시록 7장 17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21장 3-4절)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를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미 사망의 고통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위해 흘려야 될 눈물을 없습니다. 우리가 흘려야 할 눈물이 남아 있다면 복음으로 생명을 잉태하는 해산의 눈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설교를 마감하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6장 20절)


-조성욱 목사(영국 본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