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 - 천국비유 중 씨뿌리는 자의 비유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7개의 비유는 이중적인 방식으로 기능한다. 예수와 그가 선포하는 천국 복음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던 사람들에게 비유는 천국에 대한 보다 깊은 지식과 통찰을 주나, 예수와 그 메시지를 거부했던 자들에게 비유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믿음은 더 깊은 통찰과 지식에로 이끌고, 불신은 더 깊은 무지로 인도한다.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13:12)

13장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이 이미 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나라의 필수 요소로 기대되었던 몇몇 중요한 요소들이 지연 또는 연기되고 있음도 보여준다. 악한 자에 대한 심판과 의인이 복을 받아 누림은 어떤 의미에서 연기되고 있다. 예수의 선포 속에서 천국은 이미 왔으나 현 시대의 사물의 질서를, 권력의 체계를 완전히 뒤집어 엎지 않은 비밀 또는 가려진 형태로 와 있다. 그렇기에 믿음이 요청되고 깨달음이 요청된다. 그러나 깨닫고 믿어 헌신하는 자들은 이미 온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되고, 체험하게 될 것이다(10-17).

13장에 나오는 일곱가지 천국 비유는 그 모두에 있어, 천국의 생명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것이 지금 완성이 아닌 씨앗의 형태로 온 것임을 보여준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신앙의 질과 만족을 다르게 하는 중요한 내용이 된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엔 두 가지 강조가 있다. (1) 예수는 지금 추수하는 자가 아닌, 씨를 뿌리는 자로 와 있다. (2) 예수는 지금 씨를 뿌리고 있지, 열매를 뿌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시간과 과정과 성장이 필요하다.

(1) 예수는 지금 씨를 뿌리는 자로 와 있다. 예수는 지금 재판장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고 있다. 암행어사 출두요~!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예수를 오해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심지어 세례 요한 조차 심판자로 오지 않은 예수로 인해 곤란을 겪었던 것을 볼 수 있다(11:2-6)

"당신이 메시야가 맞습니까? 이스라엘과 온 세상의 왕이 맞습니까? 통치자와 심판자 맞습니까?"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맞다. 내가 그다”이다. 분명 천국이 왔다. 죽음이 극복되고, 질병이 치유되고, 회복의 복된 소식이 이미 선포되고 실현되고 있다. 단순히 말로만이 아니라 현존하는 능력으로 와 있다.

그러나 그 천국의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믿음이다. 분명히 와 있는데, 천국의 능력이 현존하는데, 모두에게 다 드러나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예수가 심판자가 아닌 구원자로 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국은 이미 예수와 더불어 와 있다. 천국 씨가 뿌려지고 있다. 뿌려지는 것은 진짜 씨이지 모조품이 아니다. 그러나 그 씨가 힘을 쓰는 것은 마치 씨가 좋은 밭에서만 힘을 쓰듯, 천국 또한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들에게만 힘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이 천국 비밀이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릴 때, 다 좋은 땅에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듯, 여기 저기 다른 곳에 떨어지듯, 하나님 나라도, 예수와 함께 와 있는데, 모두에게 생명의 풍성함을 결실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예수께 나아와 천국의 능력을 체험한 자들에게만 결실하더라 라는 것이다.

그냥 오셔서 다 고쳐주시면 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가 언제 안 고쳐 주겠다고 한 적이 있었는가? 가난하다고, 병들었다고, 못된 짓 했다고, 간음한 여인이라고 안 받아 준 적 있었는가? 부자라고, 권세자라고, 힘이 있다고 내친 적 있었는가? 그런 적이 없었다. 예수가 사람들을 맞아들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를 맞아들일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세상은 오히려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있는 예수를 죽이고야 마는 형편 가운데 있었다. 그것이 세상과 인간의 솔직한 현실이며,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우리가 예수를 만나, 알고, 구원을 얻게 되었고, 천국을 누리게 되었다. 믿음으로 반응하면, 천국은 그 능력을 나타낼 것이다. 죽임이 아닌,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