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6 - 아사 : 참된 치유자? (대하16:1-14)

 

1. 지난 35년간 이스라엘과 유다의 치유자로 살았던 아사는 36년부터 그가 죽기까지의 5년 동안 마음과  몸에 병이 든 채  하나님을 찾지도 구하지도 않고 살다가 죽어간다(7,12).  역대기 기자는 같은 주제로 모아지는3가지 사건을 잇달아 기록한다. 1) 바아사와의 갈등 해결 2) 선견자 하나니에 대한 잘못된 처결 3) 39년 발병 당시 여호와가 아닌 의원을 구함.

 

2. 아사 통치 26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죽었으니, 대하 16장이 기록하는 바아사와의 갈등은 아사 통치 36년에 일어난 일일 수 없다. 그럼에도 역대기 기자는 36년 이후의 통치에 대한 기록들 속에 아사의 온전하지 못했던 일들을 한꺼번에 기록하는 방식을 취하여 그의 말년의 마음과 몸의 질병의 증상들을 서술한다(1).

 

3. 이스라엘 주민들의 유다로의 이주로 촉발되었을 바아사의 국경 침략과 이어지는 라마 건축에 대해(1) 아사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아닌 아람 왕과의 정치적 거래를 통해 대응하여 바아사의 라마 건축을 중단시킨다(2,5).

 

4. 바아사는 이스라엘 주민들이 아사의 개혁 정책에 동조하여 국경을 넘는 것을 보고(6) 라마에 관문을 설치하여 백성의 남하를 막고자 했을 것이다. 그에 대해 아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1) 바아사의 라마 건축의 원인이 된 이스라엘 주민의 유입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2) 라마 건축을 좌절시키고 이스라엘 주민의 유입을 공식적으로 유도하고 허용한다.

 

5. 아사는 2번째 정책을 유지하기로 선택한다. 이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도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1) 직접적인 전쟁을 통해 라마 건축을 좌절시킨다. 2) 정치적 거래를 통해 라마 건축을 중단시킨다. 아사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고,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 금을 아람 왕에게 보내어 그로 하여금 바아사를 압박하도록 했고(2), 전략은 적중하여 바아사는 라마 건축을 포기하고 돌아간다(5). 아사는 라마의 남겨진 자재들을 가지고 국경지역의 경계를 강화한다(6)

 

6. 지혜로운 선택이 아닌가? 같은 사건을 기록하는 열왕기는 가치 평가 없이 사건 자체를 기술한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아사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평가한다.

 

7. 사건 자체는 아사왕 36년이 아닌 아사왕 16~26년 사이에 일어났을 것이다(아마도 16년 경). 아사의 종교 개혁 정책과 그와 병행되어 나타났던 정치 경제의 안정과 번영은 이스라엘 주민의 유입을 야기할 만큼 매력적인 모습을 띄었고(15:9), 그 결과 아사 15년 유입되어 온 백성과 더불어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을 것을 맹세 한다(15:15).  하나님은 이것을 받고 35년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막아 주시고, 그 땅에 평안을 주신다(15:19).

 

8. 그러나 15년 이후 35년까지, 20년의 평화 기간 중 어느 때, 아사는 마땅히 서 있어야 할 마음의 자리에서 떠나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책망하는 선견자 하나냐를 옥에 가두고(10), 아사의 처결을 반대하던 백성들까지 핍박한다(10).

 

9. 무엇이 문제였던가? 선견자 하나냐는 아사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하였다고 그를 책망한다(7). 구스의 세라와 맞설 당시 아사는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였고 그 결과 여호와의 승리에 참여할 수 있었다(8). 그런데 이번에 아사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는 대신, 손쉬운 정치적 선택을 통해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스라엘 주민의 유입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10. 아사 16년 이후, 아사는 밀려오는 유민들로 우쭐했을까? 내려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에 대해 다윗에 버금가는 군주라, 솔로몬이 빚은 문제의 해결자라, 이스라엘의 치유자라 칭송했을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데 바아사가 국경 넘어 예루살렘 근경의 라마에 건축을 하고 사람들의 왕래를 막는다. 아사는 전쟁을 통해 바아사를 몰아내지도, 바아사의 라마 건축을 용인하지도 않고, 대신 아람 왕을 통해 간접적으로 바아사를 압박한다. 그 결과 라마 건축은 좌절되고, 유민들의 유입은 자유로워지며, 아사는 더 큰 세력을 얻어간다. 무엇이 잘못되었던가?

 

11. 아사의 눈과 마음이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는 데서 떠나(10) 몰려오는 백성들과 사람들의 칭송, 그리고 자기 왕국의 미래에 대한 꿈에 마음이 빼앗겼던 것은 아닐까? 세력과 사람의 많음으로 백만의 구스 세라를 이긴 것이 아니었고, 오직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승리를 얻었다면(8) 아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커져가는 세력과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평안과 안정과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아사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다. 하나님만 의지하며 전심으로 그를 의지했던 이스라엘의 치료자(아사) 아사는 그렇게 눈이 가려지며 스스로 병들어 갔다.

 

12. 아사 16년에 이 일들이 있었다면, 그가 발에 병이 들어 위독해진 39년은 23년 후이다(12). 그러니 16년 경부터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아사의 마음을 덮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만족을 구하던 병인이 23년 뒤에 그 병증을 나타낸 것이 그의 위독한 발의 질병이었던 것이다.

 

13. 노년의 아사는 위독한 상황에 처해서도 여호와께 구하는 대신 의원들에게 구한다(12). 아사는 발병 이후에도 1~2년 가까이를 투병한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까지 여호와가 아닌 의원들에게 의지한다. 그렇게 아사 왕의 41년 통치는 막을 내린다.

 

14. 하나님은 아사의 병이 진행되던 25년 동안 여전히 아사의 유다에게 평화와 안정을 허락하신다. 아사가 우상 숭배 정책을 버리고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백성을 지도하는 종교 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하나님은 땅과 백성들을 치유한다. 그러나 치유자아사 자신은 백성들의 칭송과 유민들의 유입 속에 하나님 한 분만이 아닌 자기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을 의지하며 그 평안의 세월을 보내다 마침내 그 병인에서 병증이 나타나 죽게 된다.

 

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기 기자는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다고 기록한다(15:17). 그 마음의 증거로 아사는 자기가 구별한 은과 금을 하나님의 전에 드렸다고 한다(15:18). 그런데 아사는 여호와의 전의 은 금을 아람 왕에게 보내어 바아사 문제를 해결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 곁에 붙들어 둔다(2). 그런 그의 마음이 어떻게 일평생 온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역대기 기자는 아사와 바아사 사이에 있었던 갈등 상황과 선견자 하나냐에 대한 아사의 잘못된 반응을 36년 이후의 사건 속에 몰아 기록한다. 그리고는 아사의 평생이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하였다고 한다

 

16. 중요한 것은 아사의 마음이 아닌 백성의 마음일까? 중요한 것은 병들어가는 아사의 마음이 아닌 그의 통치 기간 치유되어간 백성의 마음일까? 아사 사후 무리들이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고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여 분향한다(14).

 

17.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야를 죽인 다윗은 이후 모든 유다의 왕들이 평가되는 기준이다(17:3;29:2;34:2). 그런 다윗의 치부를 기록하지 않는 역대기 기자는 대신 다윗의 인구 조사를 다윗의 중요한 범죄로 기록한다(대상 21). 다윗조차 하나님이 아닌 자기의 사람들로 자기 만족을 삼다가 실족할 뻔 한다. 그러나 다윗은 돌이킨다.

 

18. 사람의 마음이 어찌 평생 완전할 수 있을까? 아사의 마음이 평생 온전했다고 했을 때, 온전하다는 말은 히브리 말로 샬렘이다. 샬렘이란 가득 채우다라는 뜻이다. 아사의 평생, 아사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고 역대기 기자는 평가하는 것이다.

 

19. 나 비록 완전하지 않고, 나 비록 어리석고 미련하지만, 내 인생을 채우고 있는 분이 하나님임을 나는 믿는다. 36년의 통치 이후 남은 5,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분이 하나님 한 분이기를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