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라, 이스라엘아!(신6:1-9)

2012-11-14 수요일

4. 들으라, 이스라엘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유일한 여호와시다.

5. (그러므로)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온 마음으로, 네 온 목숨으로, 네 온 힘으로.

6. (그러니) 있게하라, 내가 오늘 너에게 명하는 이 말씀들이, 네 마음에

7. 너는 네 자녀들을 (이것으로) 단련시켜라. 너는 그것들을 이야기해라.

    네가 네 집에 앉았을 때나 네가 길을 갈 때에, 네가 누울 때나 네가 일어날 때에.

 

유일한 분, 비할 바 없는 분, 사랑은 본래 그렇게 배타적인 것, 다른 이에게 마음이 나눠지면 사랑일 수 없는 법(4),

온 마음, 온 목숨, 온 힘을 다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법...(5)

 

하나님 사랑은 말씀에 대한 사랑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시는 존재 방식은 말씀이다(6).

그 말씀은 천지에 충만하여 듣고자 하면 어디서든 언제든 들을 수 있다.

그 마음에 말씀이 있을 때, 마음 안의 말씀은 마음 밖의 말씀에 반응한다(6).

마음 안에 말이 없으면 마음 밖의 말은 공허한 소리가 되나,

마음 안에 말이 있으면 마음 밖의 말은 '말'이 되고, 노래가 된다. 가르침이 되고 현실이 된다.

 

세상에 수 많은 가르침이 있지만, 말씀으로라야 자녀가 단련되고, 말씀으로라야 자녀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LXX)(7a).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은 그 어떤 때에라도 중단 되어서는 안 된다(7b).

집에서 일상을 살 때뿐 아니라, 길을 떠나 여행중에도 말씀을 품고, 말씀을 나누어야 한다(7b).

잠들기 전에 다시 말씀을 기억하고, 아침에 눈을 뜰 때에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7b).

 

사람은 떡을 먹고 살지 않고, 말을 먹고 산다.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웅성대고,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어야, 사람은 살아 있다.

그러니, 들으라, 이스라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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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로움 (신6:10-25)    2012-11-15 목요일

 

25. 이것이 우리의 의로움이 될 것이다. 곧 우리가,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앞에서, 그가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말이 있다. 샌더스가 예수 당시 유대교 전체의 공통된 특징으로 꼽았던 말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은 언약이지만, 그 언약 안에 머물며 하나님 백성됨을 유지하는 길은 율법을 따르는 것이라는 말이다.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니,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을 '얻는' 조건이 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상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하니 율법은 신분을 '유지하는'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샌더스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getting in)과 그 신분에 걸맞는 삶(staying in)을 각각 '언약'과 '율법'이라는 말로 이해했다. 문제는 과연 예수 당시 유대교가 이러한 종교 구조를 모두 공유했느냐는 것인데, 그 무수한 논쟁은 일단 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의 의'에 대한 말씀을 듣는다(25). 보통 칭의론은 '죄인을 의롭다 여김',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함'과 관련하여 이해된다. 이때 의롭다 여김을 받는 근거는 보통 '믿음'이다(창15:6). 그런데 신명기 본문은 믿음을 근거로 죄인을 의롭다 여기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의'가 될 것이라 말한다. 성경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면, 칭의론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신명기 본문의 의미를 우리가 알고 있는 칭의론에 끼워 맞추어야 할 것인데, 둘 중 어느 것도 편안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의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순간 발생한다. 왜냐하면 의는 관계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의'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때 '발생'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 답게 살 때 '유지'된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산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의 율법(토라)을 지켜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 - 그 '관계 맺음'이 '의'며, '그가 명한대로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 - 그 '관계에 충실함'이 '의'다(25).

 

어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았다면, 어제 내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살지 않았다면 나는 의롭지 않다. 그러나 오늘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 간다면, 오늘 내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한다면 나는 오늘 의롭다. 의는 물건같이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지켜가는 것, 그 안에 존재한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분을 경외하며 살아갈 때(24) 나는 의롭다. 그러니 '의'란 하나님 백성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표지'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그분 앞에서 그의 모든 명령을 따라 살아간다. 만일 누군가가 하나님 앞에서 살지도 않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따라 살지도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간다.  율법 지킴은 그러니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증상이고 증거이다.

 

우리의 의는 그런데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과 같다(호6:4). 하지만 여호와의 의는 항상 있어서, 그에게 가까이 하는 자를 죄악에서 구원하시며, 다시금 그 앞에 살게 하신다(사51:8). 이것이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움'이다(롬3:21). 이분 의로우신 하나님의 나를 향한 부르심을 듣는다. "너는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 앞에서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살아가라. 이것이 너의 의로움이다."(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