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졌도다 바벨론이여 ( 21:1-17)

2012-09-03 월요일

705년 사르곤이 죽고 산헤립이 앗수르 왕이 되었을 때, 무로닥 발라단은 사르곤이 죽은 혼란기를 틈타 다시금 바벨론으로 복귀한다. 때를 같이하여 히스기야도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그를 섬기지 아니한다(왕하 18:7). 히스기야는 사르곤 치세 동안에도 반 앗수르 적인 경향과 정책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나, 정권이 바뀌는 혼란기를 기회로 반 앗수르 정책을 공식화한다. 그리하여 친 앗수르 진영이었을 블레셋의 가사와 그 사방을 공격한다(왕하18:8). 히스기야와 반 앗수르 전선을 형성하려던 자들에게 무로닥 발라단의 성공은(722-710) 하나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사르곤 사후 바벨론으로 복귀한 그는 그러나 703년 산헤립에 의해 다시금 바벨론에서 쫓겨간다.

 

바벨론의 봉기가 9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진압되었다는 소식은 반 앗수르 봉기에 가담한 히스기야와 팔래스틴 주변의 세일(11), 아라비아(13), 게달(16) 사람들에겐 어지러움과 두려움의 소식이 될 것이다(4). 바벨론의 봉기에서 희망의 서광을 보고(4), 봉기에 동참했던 그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파숫꾼을 세워야 할 것이다(5). 이사야는 파숫꾼의 입을 통해 분명하게 말한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바벨론이여!“(9).

 

시류를 읽지 못한 히스기야를 탓해야 할까? 헛된 희망을 품게 한 바벨론을 탓해야 할까? 705년 사르곤이 죽자 앗수르가 다스리던 곳곳에서 봉기의 기운이 감지되는 것은 저들의 어리석음 때문일까?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도 치고 싶을 만큼, 앗수르 왕의 멍에는 무겁고 무거웠던 것일까? 압제하는 앗수르는 악하고, 봉기하는 반 앗수르 전선은 그 자체로 선한 걸까? 어디서고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한다(2). 고관들은 틈만 나면 식탁을 베푼다(5).

 

중요한 것은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것이 아니라(12), 자기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12). 인생에 아침이 있다면, 인생에 밤도 있다(12). 품꾼에게 정한 기한이 있다면, 누려질 영광에도 그 기한이 있다(16). 바벨론의 무너짐의 소식에 어지러움과 공포를 느낀다면, 그 현실을 만드시는 여호와께 돌아와(11),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10,17). 21장에서 1년 안에 영광이 쇠할 게달은, 40장에서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42:11). 무너진 바벨론에서 무너진 희망을 보는 자가 아니라, 바벨론을 무너뜨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10)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분을 바라고, 그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