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3~14, 하나님을 변호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구하다 ( 13:1-14:22)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불의해 보인다고 사람이 하나님을 변호할 수 있을까? 그런 불가능한 시도를 욥의 세 친구들이 한다(13:7,8). 하나님을 변호할 수 있다 여기는 이유는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나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 여기는 교만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은 출발부터 사람을 무지하고 어리석고 무가치한 존재로 접어 놓는다.


엘리바스에게서 사람은 고생을 위해 태어난 흙일 뿐 하나님께 그가 무엇을 하는가 물을 수 없다(4:19;5:7). 빌닷에게서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 순전한 사람과 하나님을 외면하는 악한 사람으로 나눠지며 하나님을 외면하는 사람은 인생의 기쁨을 누릴 수가 없다(8:20,21,22). 소발에게서 사람은 자신이 무슨 죄를 범하는지도 모르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이다(11:6,12). 그러나 사람을 무지하고 어리석고 무가치한 존재로 돌리고서야 확보되는 것이 하나님의 의라면 그 의는 너무도 가난하지 않은가?


욥은 자신를 무화시켜 하나님의 의를 건져내는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보다 크시다. 그러나 자신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그는 지금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은 것이다. 그의 앞에 이르러 자신의 행위를 아뢰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숨통이 트이고 구원에 이를 것이다(13:15,16).


욥이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말을 들어 주시고 그에 응해주시기를(13:22).


친구들이 서둘러 하나님의 옳음을 변호하고 친구 욥의 의와 경건과 지혜와 삶을 부정하며 그것을 하찮은 자랑으로 돌리는 것과 달리, 욥은 자신의 하찮은 인생을 하나님은 어찌하여 크게 여기시는지, 어찌하여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만족케 할 수 있는 존재로 대하시는지, 어찌하여 자신을 품꾼처럼 그저 내버려 두지 않고 어릴 적 천지 분간 못하고 살 때에 지었던 죄까지도 생각나게 하시며 걸어온 모든 길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달아 보시는지, 어찌하여 잠시 살다 사라질 인생을 크게 여기시는지 묻고 또 묻는다(13:23-27;14:1-6).


하나님을 변호하느라 사람을 뭉개고 마는 친구들과 달리, 욥에게 하나님은 마른 낙엽같이 바람에 날려가는(13:25) 하찮은 인생을 크게 여기어 그의 걸음을 세시고(14:16) 그의 모든 길을 살펴 그의 발자국을 점검하시는(13:27) 분이시다.


그러기에 욥은 지금 친구들이 아닌 하나님을 찾는다. 자신의 지혜로 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마주하여 섣불리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세우기 보다, 욥은 하나님을 기다린다. 욥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대접한다. 어찌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크게 여기시는지, 어찌하여 부정한 자에게 정결함을 요구하는지, 어찌하여 온전한 사랑이 나올 수 없는 자에게 온전한 사랑을 요구하는지, 어찌하여 거룩하지 않은 자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는지, 하나님의 기이하신 행하심에 대해 그가 어떻게 답하실지, 욥은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세우지 않고, 하나님을 기다린다.


그분을 기다리며, 그분을 구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