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생일을 저주하다 ( 3:1-26)

 

울면서 태어나는 인생은 그러나 존재하는 순간부터 이미 누군가에게 기쁨이고 행복이다. 해산의 고통으로 생명을 낳으나 그 고통은 생명이 주는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것으로 길고 긴 이야기의 문을 연다(1).

 

세상에 대한 욥의 그림은 우울하지만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키는 세상 임금과(14) 백성들의 금과 은으로 자기 집을 가득 채우는 고관들(15), 태어나지도 못하고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들의 세상(16), 피곤함과 소요가 그치지 않고(17) 감독관의 호통과(18) 종에 대한 억압이 가득한 곳(19) – 그곳이 자신이 몸담아 살아 온 세상이다.

 

고통 가운데 새삼스레 세상의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은 아니었으리라. 이러한 현실을 익히 알면서도 어둠만이 아닌 빛이 있는 세상, 고통의 신음 뒤에 기쁨이 결실하는 세상, 존재함이 누군가에게 행복이 되는 세상이라 여기며,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자로 매일을 살고자 했으리라.

 

그러나 고난 받는 누군가의 삶에 대해동정하고 위로하던 자리에서, 정작 자기 자신 시작도 끝도 이유도 방향도 알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자리에 서자, 어둠 이면의 빛, 고통 뒤의 기쁨, 죽음 이면의 생명에 대한 들은 그의 영혼 가운데 설 자리를 잃었을 것이다.

 

앞날이 캄캄한 자에게 어찌하여 하나님은 빛을 주시는가?(23). 어찌하여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가?(20). 평온도 안일도 휴식도 없이 다만 불안만이 일렁이는 자에게 어찌 삶을 허락하시는가?(26).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차라리 태어나던 날 죽었더라면 살아 있음이 고통인 오늘의 고통을 겪지 않았으련만~!

 

그러나 욥은 보이지 않던 어둠을 더욱 깊이 인식하고 절망하기 보다, 그가 지금껏 보아 왔던 빛으로 인해 고통 한다. 어둠과 저주와 고통에 삼켜져 빨리 세상을 떠나는 것이 차라리 복이라 생각할 만큼 세상엔 어둠과 저주와 고통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욥은 이 땅에 태어났고, 빛을 보았고, 생명을 얻었다.

 

앞이 캄캄하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의 삶을 에워싼 채, 그에게 생명과 빛을 주고 있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살아 있음이 고통인 오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욥은 하나님이 그의 길을 에워싸고 있음을 알고 있다(23). 자기 삶에는 빛이 보이지 않는데, 해는 찬란하고, 별은 빛나며, 아이들은 태어나고, 생명은 자라가며, 하나님은 자기를 온통 에워싸고 계신다.

 

그렇게 입을 열어 말을 쏟아 놓는 동안....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와 같이 욥에게도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8월 말까지 이어지게 될 욥기 묵상, 앞으로  50...  그 날들을 그와 함께 보내는 동안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과 빛이 사의 찬미가 아닌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소망의 노래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