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장~2장 - 까닭 없는 고난 (욥기 1:1-2:13)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로 소개된다(1:1). 하나님 또한 그 평가에 동의한다(1:8). 하나님은 욥을 ‘나의 종’이라 부르며, 그가 세상 누구보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임을 인정한다(1:8).


많은 재물과 평안을 누리면서도 욥은 이 평가를 지켜낸다. 빈궁한 가운데 경건을 지켜내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나, 부유한 가운데 경건을 지켜내는 것 또한 녹녹치 않은 일이다. 욥은 본인 뿐 아니라 그의 자녀들 또한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앞에서 살아가도록 키워낸다(1:5).


사탄이 욥의 경건에 대해 시비를 건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는가?(1:9) 모든 소유가 넉넉하고 풍부하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아니냐?(1:10) 그러나 욥의 경건의 이유가 물질적 부요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았음을 고난을 겪은 욥 자신이 증거 한다. 욥은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한다(1:21).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하나님께 잘 보이면 물질적 부요를 보상으로 받기 때문이라면, 욥의 하나님은 다만 물질적 부요일 뿐이다. 욥은 재난으로 모든 것을 잃고도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에게 하나님은 수단이 아니다. 우상이 아니다. 까닭 없는 고난 속에서도(2:3)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1:22).


사탄이 또 시비를 건다. 소유물이야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게 되는 것 아니냐, 그 자신의 몸이 고통을 겪고, 건강을 잃고, 살아 있다는 것이 고통인 자리에 서면 그가 어찌 하나님을 경외하겠는가(2:4-5)?


그러나 욥이 말한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화도 받지 않겠느냐?”(2:10). 욥은 하나님을 욕하지 않고, 입술로 범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 욥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없다. 욥은 말을 잃고, 욥을 위로하러 찾아온 친구들 또한 7일 동안 말을 잃는다(2:13).


말은 논리다. 말을 잃는 것은 현실을 설명할 근거와 이유를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 고통인 이 삶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님은 어찌하여 이런 삶을 허락하셨단 말인가? 살아 있음이 고통뿐이라면 하나님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인간을 존재케 하였단 말인가?


세상의 부조리와 악인의 득세와 의인의 고난을 보면서 문득 문득 들었을법한 이 물음을,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로 겪으며, 욥은 묻고 또 묻는다. 어찌하여 나를 태어나게 하셨는가?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다면...(3:1)


욥기는 앞으로 이 물음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낼 것이다. 그러나 1장-2장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자연적 재난, 사람으로 인한 재난, 질병을 겪으면서, 그에 반응하며 삶을 살아내야 하는 자는 하나님도 사탄도 천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을 수도 있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를 떠날 수도 있으리라. 삶은 무의미한 소란과 분노로 가득한 것일 뿐이라 말하고 비극의 주인공처럼 죽어갈 수도 있으니라. 이유와 원인의 연관이 밝혀지는 이해 가능한 영역 속에서만 살아가기로 고집할 수도 있으리라. 동화나 환상의 세계 속으로 도피할 수도 있으리라.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 거두신 이도 여호와’라 고백하며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그에 대한 자신의 의존성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화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 반문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자기 삶을 세우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언뜻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내기의 말처럼 보이는 욥은 그러나 그 인생을 살아내는 당사자로서, 살아 있음이 고통인 오늘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자 투쟁한다. 그 투쟁의 끝에서 만나게 될 하나님과 욥이 기대된다(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