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꿈 (사 20:1-6)

2012-9-2 주일

19장에서 이스라엘과 애굽, 앗수르가 함께 여호와를 예배하는 꿈을 꾸던 선지자 이사야는(24-25), 20장에서 적나라한 현실과 마주한다. 앗수르가 블레셋 지경의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시기(1), 이사야는 3년 간 벗은 몸으로 다닌다(2).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에 의해 포로가 되어 벗은 몸으로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것이라는 예언이다(4). 3년(아마도 714-711년)!!!

아스돗에서 앗수르의 지배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아마도 히스기야는 이를 지지했던 것으로 보인다(5-6). 아스돗의 반역은 그러나 3년이 못되어 진압되고 만다.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아스돗의 반역을 바라보았을 이스라엘! 애굽이 움직여주기를 바라며 애굽을 바라보았을 이스라엘과 아스돗의 기대는 그러나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것이었다(5-6). 애굽은 지금 분열되어 있다(22왕조, 23왕조, 24왕조가 한꺼번에 공존하던 시대으니...) 그러니 내부의 문제로 정신이 없는 애굽을 의지한다는 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기대였다. 심지어 애굽은 구스의 샤바카의 통제 아래 놓여 있었고, 샤바카는 앗수르와 통하고 있었다. 그러니 구스를 기대한다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때로 이렇게 꽉 막힐만큼 어리석어질 때가 있다. 비현실을 꿈이나 믿음이라 포장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19장! 아~! 꿈꾸던 선지자 이사야는 그러나 20장에서 지독하리만큼 철저하게 현실과 마주한다. 아스돗의 반역이 일어나 사람들의 기대가 깊어지는 동안 이사야는 벗은채 생활한다. 저들이 의지하는 애굽과 나아가 구스 조차(667년) 벗은 채 앗수르 왕에게 끌려 갈 것이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마주하라고 선지자는 말한다. 사람들 눈에 가장 비현실적으로 보였을 이사야가 가장 현실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20장 바로 앞에 19장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3년간의 벌거벗은 생활은 선지자에게 참으로 고통스러운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에 굴복할 것을 예언하는 이사야는 그 적나라한 현실 너머 애굽과 앗수르가 이스라엘과 함께 여호와를 경배할 날을 꿈꾸는 자이기도 하다. 현실을 외면하는 꿈은 공허하지만, 진정한 꿈이 없는 자는 현실을 마주할 힘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현실을 외면하고, 꿈 아닌 허상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온 땅에 편만히 임할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자라야, 받아들이기 힘든 오늘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다. 오늘로부터 도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마주하기 위해서 꿈꾸는 자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