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4공동체의 신앙체험 (4:1-24)

 

 

백성이 요단을 마른 땅처럼 건넜다(1). 그런데 백성들이 요단을 다 건넌 후에도 제사장들은 오랜 시간 동안 요단 한 가운데 언약궤를 메고 서 있었다(5,9,10). 왜? 

백성이 요단을 건넜다. 그러면 언약궤를 메고 서 있던 제사장들도 건너오면 된다. 그리고 여리고를 치러가면 되는 것이다. 아니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 한 가운데 서 있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제사장들이 먼저 요단을 건너고 백성이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여호수아는 백성이 다 건너기까지 제사장들을 요단강 한 가운데 서 있게 한다. 백성이 다 건넌 후에도 제사장들은 꽤 오랜 시간을 거기 서 있는다.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취해진 12명의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수아는 요단강 한 가운데 서 있는 제사장들 발 밑에서 돌 하나씩을 취하게 한다. 그리고 이후 그것을 요단 이편 길갈에 쌓아 이 사건을 기념하게 한다(20-24). 그게 끝이 아니다 다시 돌 하나씩을 취하여 그것을 제사장들이 서 있던 곳에 쌓게 한다(9). 그리고 나서야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눈 앞에서 요단을 건넌다(11). 이 모든 일들을 주도하고 있는 이는 여호수아이지만, 이를 그에게 명한 이는 사실 모세였고, 그 일을 모세에게 명한 이는 하나님 자신이었다(10).

어찌 보면 번거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속히 요단을 건넌 백성들은 이러한 기다림과 번거로움을 통해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은 우연도 어쩌다 일어난 일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행하신 일이었다(24). 요단강 바닥에 쌓인 12개의 돌과 길갈에 쌓인 12개의 돌이 이스라엘 백성과 그 자손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도록 그들의 기억을 새롭게 할 것이다(20-24). 

홍해를 건널 때, 동원됐던 도구는 오직 하나 모세의 지팡이였다. 그러나 요단을 건널 때 동원됐던 것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었다.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기는 하나님의 손이 될 것이다. 백성들의 목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단강을 건너면서 백성들도 제사장들도 이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했을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을 지휘하면서 여호수아 자신 권위 있는 백성의 지도자로 세워져 간다(14). 

요단을 건넜다고 천국이 아니다. 앞으로 싸워 나가야 할 무수한 싸움들이 이들 앞에 놓여 있다. 싸움에 이겼다고 천국이 아니다. 앞으로 자손들을 신앙 안에서 키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싸움을 감당케 해야 한다. 때문에 사건들을 통해 사람들을 세워가야 하고, 12지파 모두를 그 일에 동참케 해야 하며, 자신들에게 생명과 땅을 주어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경외를 가르치고 교육해야 한다. 

개인의 하나님 체험뿐 아니라 공동체적 하나님 체험은 ‘나 은혜 받았다‘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그 체험이 공동체 모두의 체험이 되도록 이끌어야 하고, 그 체험을 통해 경험된 하나님의 크심을 과거의 기억 속이 아닌 오늘과 내일의 일상에서 누릴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열 두 자파에서 한 사람씩을 택하는 것, 택해진 사람들이 요단 강 중심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 그곳에서 자기 지파를 상징할 돌을 고르는 것, 고른 돌을 어깨에 매고 돌아 오는 것, 다른 지파들의 대표자들이 다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는 것,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는 것, 요단이 다시 흐르는 것을 함께 체험하는 것, 골라 들고 나온 돌을 길갈에 이르기까지 각 지파 진영에 보관하는 것, 그것을 운반하여 길갈에 이르는 것, 운반된 그것을 다시 모아 적절한 곳에 세우는 것 - 이 모든 하지 않더라도 상관 없어 보이는 그 일이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져 가는 공동체 됨의 증거가 되어, 이후 미래의 자손들에게 하나님 경외를 가르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