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 ( 1:1-11)

2012 4 20일 금요일 묵상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 온전한 기쁨을 가져라!(2)“ 어찌 보면 불가능해 보이고, 어찌 보면 비정상으로 보이는 이 명령은 그러나 인내지혜의 관점에서 보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인내란 단어 휘포모네‚~아래 머문다는 뜻이다. 이것을 어떤 상황 아래 머문다로 읽으면 말 그대로 참고 견딘다는 뜻이 되지만, ‚하나님 아래 머문다로 읽으면,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 아래 자신을 맡긴다믿음의 표현이 된다. 이 믿음은, 사태를 바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열어주는 지혜의 출발점이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자신, 하나님의 주권 아래 같이 살게 된 이웃과 형제, 하나님의 계획 아래 살아가고 있는 오늘, 독일, 직장, 한국인, 나이, 자녀....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 가운데 허락되고 있는 지금 당면한 어려움 그 시각을 갖고, 그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자신을 맡기는 것인내이고 지혜이다.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 그 안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인정하고 지금을 감사하는 것그것이 우리가 온전히 이루어야 할 인내의 시작이다(4). 인내의 길을 여는 지혜이다그러한 지혜가 없이 그저 참고 견디는 것속병과 한을 만들고, ‚억울함과 원한을 만든다. 눌러놓은 스프링처럼 그 만큼 강하게 되 튕겨 나가 나도 누군가도 상처 입힐 뿐이다.

    어찌 보면 쉬워 보이는 이 지혜는 그러나 막상 그러한 상황을 만나고, 그러한 시간을 통과하게 되면, 결심만큼 쉽게 우리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곤 한다. 오히려 수도 없이 의심이 들고, 그 의심을 처리하느라 마음은 분주해진다(6).  의심이라 번역한 말은 판단하는 마음이다(6). 속으로 끊임없이 상황에 근거한 판단들을 내린다. ‚잘 될 것이다잘 되지 않을 것이다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나름 그 때마다 판단의 근거가 있다. 그러나 그 근거란 끊임 없이 변하고 요동하는 파도와 같은 것이다(6). 상황과 환경은 그 자체 달라지기도 하고, 내 마음의 요동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확고하던 믿음이 한 순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송두리째 흔들리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를 붙잡아 주는 분명한 좌표가 있다. ‚가난한 자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9), ‚부한 자는 자기의 가난함을 자랑하라는 것(10)이다. 사람들은 부유해지는 것, 높아지는 것, 많이 가지는 것자랑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80을 살다 보면, 그런 높다는 것이 다 부질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된다(11). 부한 자도 자기 인생길을 걷다 보면(‚행하다 보면‘), 짧은 여행길에 뭘 그리 많이 짊어지고 살았던가 생각하게 되고, 자기의 진정한 자랑은 오히려, ‚약함이었고, ‚가난함이었고, ‚낮음이었음을 알게 된다. 시드는 꽃 같은 순간의 영화에 마음이 빼앗기면, ‚인내지혜믿음온전함도 누릴 수 없다. 그러니 영원한 것‘,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마음을 빼앗기자. ‚화평과 관용, 긍휼, 선함, 편견 없음과 거짓으로 가릴 필요가 없는 마음, 성결과 온유(3:17)‘에 마음을 빼앗기자.

     마음이 쓸데없는 것으로 분주하다면, 쓸데 없는 것이 분명하다 여겨지는 생각에 그럼에도 사로잡혀 분주하다면, 그 때(바로 지금이다), 하나님께 나아가 지혜를 구하자. 누구에게든지 넉넉하게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능하신 손 아래 있는 자신(=인내)‘을 볼 수 있는 지혜를 반드시 주실 것이다.

 ----------------------------

속지 말라 (야고보서 1장 12절~18절)

2012년 4월 21일 토요일 묵상

속지 말아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16). 세상에 속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시험에 빠지는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이고(14), 하나는 하나님을 믿지 못해 흔들리는 것이다(13).
미혹한다는 말은 미끼를 던진다는 말이다(14). 미혹된다는 것은 미끼를 문다는 말이다. 손쉬운 성공과 우연한 횡재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남들은 다 쉽게 가는데 나는 왜 이리 어려움이 많냐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남들을 폄하하는 것이다. 정작 자신도 바라는 것은 우연한 횡재거나 손쉬운 성공이면서 말이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15). 잉태하고, 낳고, 자라고, 장성하고, 노년이 되고, 마침내 죽는, 길고 긴 싸이클을 갖는다. 그래서 때로 살아 있다고, 누리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엉뚱한 것을 겨냥한 평생은 허공을 가르고 떨어질 뿐이다. 그 끝은 '사망'이다. 지금 스스로 정검해보라. 허공 어디쯤을 날고 있는지, 아니면 시련을 참고,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지(18)...
때로 삶이 고되고, 하루가 더디게 갈지라도, 인생 끝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것은 '생명의 면류관'이다(12). '부함'이나 '아름다운 모양'이 우리 과녁이 아니라(11), '첫열매' 곧 '생명의 누림'이 우리의 과녁이다(18).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싶으신 것이다. 온갖 좋은 것을 '주시는 분',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 그림자가 일체 없는 분, 빛 그 자체이신 분... 그는 온전히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욕심에 넘어가지도 말고, 하나님 사랑을 의심하지도 말자. 속지말자!
-------------------
속히 듣고, 더디 말하기(야고보서 1장 19절~27절)
2012년 4월 22일 주일 묵상
속히 듣고 더디 말하는 자가 있고(19), 더디 듣고 속히 말하는 자가 있다. 전자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후자는 자기 의를 의루려다 누구의 의도 이루지 못한다(20). 속히 듣는다는 것은 흘려 듣고, 대충 듣는다는 것이 아니라, 먼저 듣고, 끝까지 듣고, 마지막까지 듣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대개 자기 말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다. 술자리가 혹시 사람 마음을 풀어준다면 그것은 서로 아무도 듣지 않으면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했기 때문이다. 속에 말이 쌓여서 술을 마시지, 남의 속에 있는 말을 들어주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내가 말하는데, 들어 주신다. 내가 말하는데, 천지의 주인인 하나님이 귀 기울이신다. 그렇게 그분에게 마음을 쏟아 놓다보면, 마음이 풀리고, 분노도 풀린다.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그 때, 내내 들어주시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입을 열어 말씀하신다. 내게 말 걸어 주신다.

사람 속에 맺혀 있는 이야기들, 토해 놓을 곳을 찾지 못한 자들의 말들은, 사실 아무도 듣고자 하지 않는다. 듣지도 않고, 다 들었다는 듯 '정답'을 이야기하고는 자리를 떠나버린다. 그러나 정작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누군가이다. 하나님처럼 내게 귀 기울여 주는 누군가이다. 하나님처럼 내게 말 걸어 주는 누군가이다. 하루에도 수 없이 사람을 만나, 말하고, 말하며, 또 말하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때로 후회하고, 때로 자책한다. 그러나 참으로 들어 주는 이 없는 마음의 말들은 결국 분노의 형태로 폭발한다. 관계를 해치고 의를 해친다.

마음에 쌓인 분노가 있다면, 그것을 터뜨리기 전에, 한번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귀 기울여 보자. 말하기 전에, 먼저 들어보자(22-23). 말하기 위해 듣지 말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들어보자. 하나님 처럼 들어보자. 들을 마음의 여유가 한 올도 없다면,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해보자(27). 그리고 그에게 조용히 나아가 맺힌 말들을 쏟아 놓자. 먼저 듣고, 끝까지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다. 말로 할 수 없는 속 생각까지 남김없이 다 들어주실 것이다. 바로 이곳 - 참된 경건이 시작되는 자리(27). 듣기, 그리고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