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50> 요한11이것을 네가 믿느냐 (2010-05-11)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11:5-6)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 예수는 일부러 이틀을 더 머무신다.

제자들은 생각했을지 모른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사랑하시지만,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상황 때문에 결국 나사로에게 가지 못하시는구나    그러나 예수는 이틀 후 나사로에게로 간다. 유대인들의 위협 때문에 가지 못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자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그에게로 가지 않고 예수께서 이틀을 더 머물렀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예수께서 급히 나사로에게로 가셔서 그를 고치시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예수의 말뜻을 그들은 얼마나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고,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로 하여금 죽음을 겪도록 내버려 두신다. 이틀간의 머묾과 베다니로의 여정 중에 나사로는 죽는다. 나사로 자신은 자신의 죽음을 경험했고, 마리아와 마르다 또한 오라비의 죽음을 경험했다. 깊은 슬픔… 

예수는 저들이 죽음을 맛보고, 슬퍼하고, 고통 하도록 내버려 두신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나사로를 죽음에서 불러내신다.  이로 인해 마르다와 우리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온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게 된다.

말씀은 이해하고 깨달아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삶으로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 삶을 이끌어가신다. 나사로의 병듦, 고통, 기도, 응답 없음, 죽음, 슬픔, 원망…. 결코 짧게 느껴질 수 없었던 4일 또는 일주일 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예수는 그들을 사랑하심으로 통과하게 하신다. 그 때 그들은 결코 상상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리라는 것을! 그러나 바로 그것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그 시간들은 가치 있고, 그렇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허락하신다.

내가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좌절되어간다고 느껴질 때, 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빠져나가고 어떠한 소망도 가질 수 없다고 느껴질 때예수는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그 시간들을 오롯이 겪게 하신다.

그 시간들을 견디고 난 뒤, 그는 그 때처럼 다시 나를 불러내실 것이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러나 그 음성이 들려지기까지 나는 내게 허락하신 죽음을 마지막 한 순간까지 샅샅이 체험해야 한다.

그 후에야 나는 참으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주여 그러하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