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50> 마태15내가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2010-04-17)

15장은 전반부에 유대인 중 최고의 성결을 유지하고 산다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비판과, 후반부에 가나안 여인과 갈릴리 동편 이방의 땅에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고치고 그들을 먹인 일에 대한 기사로 구성되어 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는 선언은, 음식규정에 유대인다움의 근거를 두고 있던 바리새인들에겐 받을 수도, 견딜 수도 없는 말이었다.

유대인들은 우리는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고, 더러운 것에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스스로 깨끗하다 생각했다. 그들에게 있어 이방인들은 부정한 음식을 먹는 더러운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을 먹느냐로 사람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무엇이 나오는가로 사람이 의로운가가 확인된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관점에서 최고의 성결을 자랑한다던 바리새인들은 부정하고 더러운 자들이다, 그러나 저들은 음식규정을 지키는 것으로 스스로 깨끗하다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예수님의 진단이다.

이에 비하여 가나안 여자는 스스로 개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깨끗케 하심을 바라고 예수님께 나아온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이란 자기 안에 의가 없다는 것, 자기 안에 죄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예수님께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이방 땅으로 모여온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이, 자기에게 나오는 자들을 먹이고, 고치며, 의롭게 하실 것이다.

나는 목사고,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온 자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말한다. ‚입술로 무엇을 말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무엇이 나오는가가 중요하다.‘ 마음을 들여다 보고 확인한다. 내 안엔 의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아가 말해야 한다. ‘주여, 옳소이다. 그러나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15:27). 

그러면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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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마태 8장에서 기꺼이 이방인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고, 돼지치며 사는 이방땅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젊은이를 고치신 예수께서 이곳 15장에서는 가나안 여인에 대해 이상할 정도록 혹독하고 실랄하다. 이 여인은 그러나 그에 굴하지 않고 예수의 고쳐주심을 구한다. 바리새인들의 자기인식과 예수에 대한 태도와, 가나안 여인의 자기 인식과 태도는 얼마나 다른가? 어쩌면 예수님은 바로 이 부분을 극명하게 대조시켜 보여주고 싶으셨을지 모른다.

가나난 여인을 이스라엘 우선권을 내세워 차별하는 듯 보였던 예수님은 그러나 이어지는 문단에서 이방인들의 땅으로 보여지는 곳에서(막7:31), 이방인들의 무리로 보여지는 4천명을 먹이고 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