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감 ( 2:1-22)

 

1977년 샌더스와 던 이후 바울에 관한 새관점이라는 이해가 등장하면서 바울의 칭의론과 관련한 논쟁이 새롭게 불붙었다. 새관점이 있다면 옛관점도 있을 것이다. 옛관점이란 불트만과 케제만으로 대표되는 루터를 따르는 바울 이해를 가리킨다. 옛관점은 그 중심에 죄 아래 팔린 인간이라는 인간론이 놓여 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경건의 행동을 통해서든, 죄 된 행동을 통해서든, 그가 목표하는 바가 아닌 죄의 지배 가운데 있는 상실된 자신에 이르게 된다. 오직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과 죄인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인간은 참된 자신이 될 수 있다. 자유는 그렇게 얻어진다. 의는 인간 편에서 만들어 꺼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 편에서 인간에게 허락하는 것으로 다른 무엇도 아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다. 이 관계는 사람의 행위와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지 않고, 하나님 편에서의 은혜의 베풂으로 허락된다. 믿음은 바로 이 은혜를 받아들이는 통로이고,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진다.

 

그러나 새관점 신학은 이러한 인간론 중심의 바울 이해를 중심 자리에서 주변부로 옮겨 놓는다. 바울 신학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인간론을 통해 이해된 칭의론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일해오신 하나님의 온 인류를 향한 계획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하는 언약역사와 그 역사의 목표를 가능케 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 교리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 가운데 빠져 마땅히 누리도록 허락된 복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저주 가운데 있는 인간을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약속을 따라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 이르기까지 예수 안에서 복을 누리는 자리로 불러 들이셨는가 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 일을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한 새 인류를 만들어 내심으로 이루셨다는 것이다.

 

바울 당대 유대교는 새관점에 따르면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는 공로주의가 아니었고 언약이라는 은혜 안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언약 백성됨을 유지하는 언약적 율법주의였다. 만일 새관점의 유대교 이해가  맞다면 바울의 대적은 더 이상 공로주의 유대교가 아니게 되고, 그 경우 바울 신학의 중심은 공로주의에 반하는 이신칭의가 아닌 다른 것이 되어야 한다. 

 

새관점에서 볼 때 믿음으로 의를 얻는 다는 것은 공로에 반하는 은혜에 대한 강조에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에게만 특권적으로 주어진 율법이 아닌 이방인을 포함한 땅의 모든 족속이 하나님의 복에 참여케 되는 하나님의 방법으로서 그 강조점을 갖는다. 유대인들이 율법이라는 표지를 가졌다면, 새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믿음을 자신들의 표지로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신칭의는 구원론이 아닌 교회론에 자기의 자리를 갖는다. 이신칭의란 누가 예수 안에서 새롭게 지어진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 자들이며, 그들은 어떤 표지를 갖는가에 대한 답으로서 그 답은 율법이 아닌 믿음이다. 따라서 여기서 믿음은 인간의 행위에 반대되는 말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에 반대되는 말이 된다. 옛관점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인간을 참된 경건에서 멀어지게 만들지만, 새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마땅히 충성과 성실함으로 자신의 새언약의 백성된 표지를 나타내는 경건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 에베소서 2장은 그 말 많고 논쟁 많은 옛관점과 새관점의 교차를 보여준다. 먼저 옛관점의 전형적인 표현을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8. 왜냐하면 여러분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사람들의) 행위들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누구도 자랑 할 수 없습니다.“ - 구원은 사람에게서 비롯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 그 이유는 사람이 죄와 허물로 인해 죽어있기 때문이며(1), 죄 아래 팔려 날 때부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이다(3). 그러니 이방인 뿐 아니라 유대인 조차 구원을 위해 자신이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우리 또한‘-3). 그리하여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만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

 

하지만 에베소서 본문은 이러한 구원을 구원론적 관점이나 인간론적 관점이 아닌 교회론적 관점과 언약 역사적인 관점으로 풀어간다(11-22). 하나님은 율법을 따라 살던 유대인과 율법 없이 살던 이방인을 나누던 벽을 허물고 그리스도 예수의 몸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셨다(14-16). 율법은 더 이상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사람의 표지가 될 수 없다. 율법은 오히려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적개심을 심었고 분리를 낳았다. 자기의 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법령으로 주어진 율법을 폐하심으로 이제 하나님 백성의 표지는 더 이상 율법이나 유대인 됨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 있음이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어진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일으켜지고, 함께 하늘 보좌에 앉혀져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들을 누리는 자들이 되었다(1:3,20).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언약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성취된 것이다.

 

이제 유대인들이라는 건물과 이방인이라는 건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이 건물들이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하나의 건물 곧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 자라가고 있다. 이렇게 지어지는 한 건물, 이렇게 태어난 한 가족이 가능해진 것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며, 그리하여 새롭게 지어진 새 인류의 표지는 율법이나 민족의 혈통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 있음이다(21,22).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음은 믿음을 통해 신자들에게 현실로 확인되고 누려진다.

 

옛관점과 새관점은 무엇이 맞다 무엇이 틀리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작정하신 일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시는 새 창조의 일을 각각의 강조점을 따라 보여주는 창문이라 할 것이다. 창문 너머 놓여진 하나님께서 빚어 만드시는 역사와 인간이라는 현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신 일에 대한 하늘에 속한 믿음의 현실을 어떻게 언어와 사유로 엮어 짜나갈 수 있는지는 이어지는 본문과 더불어 살아가는 내일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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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 (사역)

 

1. 여러분의 죄들과 허물들로 인해 죽은 여러분(그가 살리셨습니다.) 2. 그때 여러분은 그런 (죄들과 허물들)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곧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서,  공중의 권세의 지배자를 따라서,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영의 (지배자를 따라서 살았습니다). 3.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그 때에 우리 모두도 육신과 생각들이 원하는 것들을 행하며 우리 육신의 욕망들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우리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의 많은 사랑으로 인하여 5. 허물들에 의해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 6. 그가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일으키셨고, 하늘에 함께 앉히셨습니다. 7. 이는 그가 다가 올 세대 가운데 그의 은혜의 지극히 부유하심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선하심으로 나타내려 하심입니다. 8. 왜냐하면 여러분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행위들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누구도 자랑 할 수 없습니다. 10. 왜냐하면 우리는 그가 지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선한 일들을 위해(or. 선한 일들로 인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창조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 (선한) 일들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은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육체를 따라 이방인이었을 때, 손으로 육체에 (할례를) 행한 할례자라 불려지는 자들에 의해 무할례자라 불려졌고, 여러분은 그 때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의 시민권에 대해서는 소외된 자들이었고,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는 외인들이었으며,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13. 그러나 지금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멀리 있던 자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가깝게 되었습니다. 14.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둘을 하나로 만들고, 분리의 담과 원수 됨을 그의 육체 안에서 헐어버리고, 15. 법령(도그마)으로 있던 계명들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이는 자신 안에서 이 둘을 한 새사람으로 창조하여 평화를 만들고16. 십자가를 통해 원수 됨을 없애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17. 그가 와서 먼데 있던 여러분에게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도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57:19). 18. 왜냐하면 그를 통하여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갈 길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 이상 외인도 아니며 거류자들도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하나님의 한 집안 식구이며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권자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지어졌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자신이 모퉁이돌입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건물이 함께 결합되며 주 안에서 성전으로 자라갑니다. 22.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 또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지어져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