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 생명의 샘 Vs 태우는 불 (야고보서 3장 1절~12절)

2012년 4월 25일 수요일 묵상

지극히 작은 키가 지극히 큰 배를 움직이고(4), 지극히 작은 불이 온 숲을 불태우듯(5), 지극히 작은 혀가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른다. 불사르곤 한다(6). 그러니 말들을 제어하기 위해 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듯, 우리 또한 스스로의 입에 재갈을 물릴 수 있어야 한다(3). 그러나 어찌하랴? 그렇게 할찌라도 혀를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으니!(8) '우리'는 다 실수가 많다(2). '우리'라고? - 야고보 자신, '실수가 많은 사람들' 속에 스스로를 포함시킨다! 그렇지만 혀는 생명의 샘이 될 수도 있다(11). 쓴물을 내고, 저주를 내는 샘이 될 수도 있지만, 단물은 내고, 찬송을 내는 샘이 될 수도 ...있다(10-11). 그러니 말을 하는 사람은 말할 때 반드시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 혀는 불이며, 독이고, 칼이다(6). - 불도 독도 칼도 잘만 사용하면 그것만큼 사람에게 유익한 것도 없다. 독도 칼도 약이 된다. 하지만 한 순간이라도 한눈을 판다면 혀는 누군가를 죽이는 칼이되고, 독이 된다. 누군가의 인생을 불살라버리는 불이 된다. 그러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러면 어찌 말하며 살 수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생각이 맞다. 생각 없이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면, 생각 없이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말은 칼이고, 독이고, 불이다.

(2)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엄한 존재다(9). - 사람은 누구에게나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다. 어려운 사람 앞에서는 조심하는 법이다. 그러나 쉽게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는 쉽게 말한다. 그렇게 쉽게 뱉어진 말이 불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완전히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림에도 신경쓰지 않는다. 생각 없이 말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같잖기 때문'이다. 그러니 함부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어떤 사람 앞에서는 더할 수 없이 조심스레 말을 한다. 야고보가 그렇게도 비판했던 '차별'이다. 그러나 내가 말을 '뱉는' 상대방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더할나위 없이 존엄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대하듯 사람을 대하고, 하나님 앞에서 말하듯 사람 앞에서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를 지은 그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9). 사람을 '같잖게'여기는 것은 그를 지은 하나님을 '같잖게'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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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야고보서 3장 13절~18절)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묵상
함축적인 야보고의 문장을 읽다가, 원문에서 느낄 수 있는 뉘앙스를 담아 풀어 옮기는 것으로 오늘의 묵상을 대신합니다. 야고보의 마음이 전달되기를!
 
13. 여러분들 가운데 지혜롭고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지혜로운 자가 마땅히 갖는 온유함으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통해, 자기 지혜를 보여야 합니다. 14. 그러나 만일 독한 질투와 헛된 경쟁심이 여러분 마음에 있다면, 자기가 누구보다 낫다는 것을 보이며 의기양양해 하거나, 없으면서도 있는 척하느라 고생이 작심할 것인데, 이것이 마땅한 일이겠습니까? 15. 이런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지혜가 아니며, 다만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입니다. 16. 왜냐하면 질투와 헛된 경쟁심이 있는 곳, 그곳엔 혼란과 모든 어리석은 일들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17.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마땅한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순결합니다. 그리고 평안을(=풍성하게 넘쳐남을) 그 사람 가운데 이루어 냅니다. 자신 안에 넉넉함이 있으니 다른 이에게 기꺼이 양보할 수 있게 됩니다. 상대방을 믿고 그의 말을 따라 줍니다. 사람을 향한 긍휼이 가득하여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한 일들을 몸으로 행합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며, 있는 척 하지도 않습니다. 18. 그러니 의의 열매는, 스스로도 평안을 누리며, 사람들 사이에도 평화를 만들어내는 자들의 삶 가운데, 씨가 뿌려지고, 자라나고, 마침내 결실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