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 여섯 가지 반 명제, 그리고 사랑 (마5:21-48)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간음이며, 형제에게 분노만 해도 살인이니, 너희는 다 살인자고 간음자다‘라는 비현실적인 말씀을 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너희는 다 죄인이고, 그러니 너희는 내가 필요하니 나를 믿어야 한다.‘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를 믿으면 너희 마음이 달라져서 이제 이 모든 일들을 다 해낼 수 있다‘라는 것도 아니다.

마음으로 분노했으니, 마음으로 미워했으니 너는 살인자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었으니 너는 간음한 자다 라는 낙인을 찍으려는 것이 예수님의 의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혀 주시려는 것이 6개의 반명제의 의도이다. ...

예수님은 율법의 파괴가 아닌 완성(충만하게 채움)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6가지 반명제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즉, ‘율법이 지향하고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다.

처음 네 개의 반 명제, 곧, 살인, 탐욕, 간음, 맹세는 다 십계명에 속한 계명들이다.
첫째 반 명제. 살인하지 말라. (6번째 계명)
둘째 반 명제. 음욕(탐욕) -> 탐내지 말라. (10번째 계명)
셋째 반 명제. 아내를 버리지 말라, 곧 간음하지 말라. (7번째 계명)
넷째 반 명제. 맹세하지 말라. 곧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3번째 계명)

예수님의 말씀은 십계명의 정신, 그것이 지향하는 바에 대한 일종의 주석이요 설교라 할 수 있고, 그 핵심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길이다. 마지막 반명제인,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 모두에게 햇볕과 비를 주신다는 것은(45), 바로 이런 율법의 지향을 보여준다.

음행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이유에서도 배우자를 버릴 수 없다(32). 왜냐하면 하나님이 짝지어 준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율법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너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통해, 아내와 남편 사이에 적용되는 사랑의 계명의 기준, 방법, 원리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아내와 남편은 사실 우리의 첫 번째 이웃이다. 그러나 아내와 남편은 가장 가까운 이웃, 첫 번째 이웃인 동시에 한 순간에 남남이 될 수도 있는 사이이기도 하다. 때로 아내와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원수 지간이 될 수도 있다.

아내와 남편 사이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6가지의 일이 다 일어날 수 있다. 살인, 간음, 탐욕, 모욕, 멸시, 맹세. 아내와 남편 사이에서는 오른 쪽 뺨을 맞는 일이 일어나고, 오리를 가자는 강요가 일어나며, 속옷까지 가지고자 하는 잔인함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런 아내와 남편에 대해, 예수께서 주신 단 하나의 지침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아내와 남편에 대한 말씀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 관계 전반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악인과 의인이 분리되어 살아가는 것이 율법이 목표하는 바가 아니다. 고고한 의인들의 집단을 만드는 것도 목표가 아니다.

교회가 ‘우리가 얼마나 선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는가? 교회에 대한 욕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식으로 세상과의 분리를 만들어 가지려 한다면, 그것은 바리새인의 의를 따라가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과 자신을 구별하지 않는 것‘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제자들도 각양 이력과 과거를 가진 사람들을 다 불렀다. 그는 가롯 유다도 제자로 부르셨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끼리만 식사 했지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도 식사하셨다. 그것이 교회의 의로움이며, 율법이 목표하는 의로움이다.

'하나님이 짝지어 준 짝이 어찌 이런 사람이란 말이냐?' 원망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사람을 아내와 남편으로 붙여주신 이유이다.

사랑이란 환상이 아니다. 사랑은 함께 살아가되,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내가,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옳다‘가 율법의 목표가 아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훌륭한 일들을 성취해 내었느냐?‘도 율법의 목표가 아니다. 얼마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함께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 있는가?가 율법이 목표하는 것이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