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1장 – 광야에 부는 여호와의 바람 (민11:4-35)

 

애굽에서 한번도 누려보지 못했을 성공과 화려함을 새삼 박탈이라도 당한 양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의 탐욕에 대해(4,5), 지속적인 가르침과 교육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굽이 삶의 기준인 백성을 보는 모세의 절망에 대해(11,15) 하나님은 바람(/영)을 통해 답한다. 

 

백성의 탐욕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광야에 부는 바람(루아흐)이다(31). 봄 가을, 아프리카와 유럽을 오가는 철새인 메추라기가 역풍을 만났던지, 그렇지 않아도 낮게 날던 메추라기가 이스라엘 진영 주위를 기진한 채 낮게 이동하고 있다(31). 소쿠리로 긁어 모을 수 있을 만큼 기진해 있는 메추라기 떼를 만난 이스라엘은 꼬박 이틀 낮 밤을 메추라기 ‘수거‘에 매달린다(32). 적게 거둔 자도 10 호멜이다(32). 그러니 나귀 10마리에 실을 수 있는 분량이다.

 

눈에 불을 켜고 이틀 밤낮을 꼬박 메추라기를 모으는 동안 이스라엘은 퓨즈가 나가있다. 탐욕이다. 남들 다 정신 없이 거두어 모아 들이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이들이 같이 뛰어들어 의미 없는 경쟁에 불을 붙였지만, 이틀 뒤 정신이 돌아오면 나귀 10마리에 실을 만큼의 메추라기를 어떻게 이고 다닐 것이며 하루 이틀이야 맛이 있지 그 많은 것을 얼마 동안이나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정신이 들어 일어난 아침 진영 주위에 가득 널어 놓은 메추라기를 보며 자기들 안의 탐욕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는지 이스라엘이 자기 눈으로 확인하도록 여호와의 바람(/영)이 광야에 힘있게 불어 왔던 것이다. 

 

통제 되지 않는 백성으로 고통스러워 하던 모세를 위해 하나님은 70인의 장로를 세워 모세에게 주었던 영을 그들에게도 주신다. 그런데 그 중 2명은 회막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하나님의 영이 내려 예언을 한다(26). 모세의 지도력 누수를 염려한 여호수아가 그들의 예언을 금하라 하지만 모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영이 내리기를 원한다고 답한다(29). 

 

사실이지 70장로는 새삼스레 지금 세워졌던 것이 아니었다. 이미 출24장에서 70장로가 언급되고, 출18장에서 천부장 백부장 등이 세워진다. 지도자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고, 모세 혼자서만 백성을 책임지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이미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체계가 잡히고,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 선출되어 있었다. 그에게 새삼 그를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다. 

 

모세는 자기의 통제 아래 다 통제되어 들어오지 않는 백성의 상황으로 인해 절망했었을지 모른다. 개중에는 지도자들이 오히려 모세를 불편하게 하였을지도 모른다. 회막 앞으로 모이지 않았던 두 사람, 엘닷과 메닷이 어떤 이유로 모세의 말을 따르지 않고 회막 앞이 아닌 진영 가운데 있었는지는 모른다. 아무 설명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내렸다. 모세의 영을 취하여 회막 앞에 모인 자들에게 그 영을 내려준 것과 달리, 이들 두 사람에겐 모세의 영이 아닌 그냥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예언을 한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통제권 밖에 있는 자들에게도 얼마든지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신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은 엘닷(‘하나님께서 사랑하셨다‘), 메닷(우정, 또는 사랑과 관련된 의미)이다. 

 

자유롭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보며 모세는 자신의 쥐었던 손을 펴고 하나님의 자유와 하나님의 일하심에 자기 백성을 맡긴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을 잠시 자신이 맡아 자기 몫의 책임을 감당하는 것일 뿐 자신 또한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는 그의 종이다.

 

광야에 부는 여호와의 바람이 한편 백성의 탐욕을 한편 모세의 욕망을 뒤집어 보이며 말씀하신다. 삶에 대한 통제권을 움켜쥐려는 손을 펴라고, 손가락 사이를 흐르며 자유롭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바람을 따라 오늘을 살아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