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장 –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자 (고후 6:1-7:1)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여러분을 권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십시오”(1)

 

바울에게 주어진 은혜는 말 그대로 헛되지 않았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 바울은 자신의 정체를 남보다 더한 자신의 수고나, 자신이 행한 일에서 찾지 않고, 그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에서 찾았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택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불렀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갈 1:15-16)

 

바울의 이러한 자기 이해는 어디에 근거하는 것일까?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오늘 본문 고후 6장의 인용에서 발견된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3)

 

바울의 이 말씀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는 사 49:8의 인용이다. 사49:8 말씀은 소위 두 번째 종의 노래가 끝나는 자리에서 시작되는데, 바울은 이 종의 노래에서 자신을 향한 부름을 확인하였음이 분명하다.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그가 이르시되…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사 49:1,6)

 

바울에게 부어진 은혜는 그의 정체와 소명을 새롭게 하였고, 그에 근거하여 바울은 평생을 살아갔다. 그는 자신의 모든 삶을 그가 터하고 있는 말씀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겪었던 모든 환난과 궁핍, 고난, 매 맺음과 갇힘, 난동과 수고로움,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한 것 등을(4,5) 그는 종의 노래에 나타난 여호와의 종의 고난에 대한 말씀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고(사49:7) 그로인해 그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그의 정체를 구성하는 것은 그러니 이제 은혜이지 더 이상 남보다 더하는 무엇이거나 자신이 이룬 업적 또는 성취가 아니다. 은혜가 자신의 정체와 소명을 구성함을 알게 될 때 영광과 욕됨, 유명과 무명, 아름다운 이름과 악한 이름, 칭송과 비방에(8,9) 우쭐하거나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은혜의 자리에서 자기의 자기됨을 확인하지 못하고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릴 때 그는 그의 무수한 수고와 성취 가운데서도 쓸모 없는 자 곧 벨리알의 아들이(15) 될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은혜가 주어졌는지 그 소명을 잊지 말고, 누구에게 은혜가 주어졌는지 그 정체를 잃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