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4장 – 맹세가 아닌 말씀 (삼상 14:1-52)

 

“사울이....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24)

 

블레셋은 사울 평생의 대적이고 그래서 그의 원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울은 왕이 된 후 처음 블레셋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전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가 참혹하게 패했다거나 전쟁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거나 했다면 그의 이 말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에게 모여 들었던 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흩어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나의 원수‘라고 부를 정도의 이유는 아니다.

 

유일한 이유를 꼽는다면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드렸던 제사가 이유가 되어 사울의 왕좌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13:14). 그러니 사실 사울의 원수는 블레셋이 아니라 조급히 행동했던 사울 자신이고, 조급한 행동의 근저에 놓인 그의 불신앙이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 안에서 발견해야 할 원수를 자기 밖에서 찾는다. 그렇게 자기의 원수를 자신 밖에 만들어 놓은 사울은 가장 종교적인 방식으로 그 원수를 제압하려 한다. 그러나 그가 종교적인 모습을 전면에 내세울수록 그는 더욱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된다.

 

지켜야 할 것이 자기 자신뿐인 사람,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곧 자기인 사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할 수 없는 사람, 자신을 그 위에 세울 말씀이 없는 사람 – 그는 스스로 말을 내어 자신 발 밑을 떠받칠 맹세를 쏟아내게 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마다 죄다 맹세다. “아무 음식물이든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24,28)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다단에게 (죄가) 있다 할찌라도 반드시 죽이리라“(39),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44)

 

지금이라도 급하게 찾아야 할 말은 ‘맹세‘가 아니라 ‘말씀‘이다. “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5:1-2)

 

다른 이들의 말에 휘둘리지도 말고, 스스로 성급히 말을 내뱉지도 말고, 여전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마주쳐야 한다. 그가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왕권을 넘겨줘야 한다면, 사울이 아닌 요나단의 길을 걸어야 한다. 잡을 수 없는 것을 맹세로 붙잡기보다, 가까이 하여 그의 말씀을 듣고 나의 각오가 아닌 그의 신실하심을 의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원수 나의 대적자는 바로 나 자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