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장선 예수님

28장 처음 맞이하는 구절은 여리고에서 부터 예루살렘을 올라갈때 까지, 맨 앞에서 앞장서신 예수님의 모습이였다.
자신이 이스라엘을 로마로 부터 구원하고, 하나님 법으로 예루살렘에서 우주적 통치를 행할 메시야라는 것을 끝까지 부인하시는 것이 지금까지 예수님이었다. 왠일인가 제자 둘을 보내어서 어린 나귀를 맞은편 마을에서 풀어오라고 한다. 드디어 제자들은 필링이 꽂혔다.

"구약의 왕들의 모습으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구나!!  역시 우리 선생님! 우리의 주님은! 우리 동포와 민족을 저버리지 않는 구나.. 하나님 유대 민족을 불쌍히 여기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아~ 이제 오랜 고난과 질고가 마치고, 우리는 해방되었고, 구약의 예언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참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구나!.. 그 말씀에 충실하고자 이렇게 많은 피를 흘렸는데... 하나님이 신원하시는 구나!"

이러한 염원에 처음 탄성을 지른 사람은 두 명의 파송받은 익명의 제자들이었다. 나귀를 풀면서, 예수님의 말씀이 또 다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그들의 심장은 터질 것 같았을 것이다. 나귀를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와서는, 서슴없이 자신의 겉옷을 벗고 나귀 위에 걸쳤다.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의 가슴 벅차는 기대처럼, 예수님 나귀에 오르는것 초차 거절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결코 스스로 나귀에 오르지 않았다).

유월절을 지키려고, 멀리 바벨로니아에서, 인도에서, 이란에서, 소아시아와 그리스에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모이는 유대의 경건하고 신실한 자들은 나귀 타고 입성하는 다윗의 아들을 보았다. 제자들은 겉옷을 땅에 펼치고, 왕의 길을 예배하였다.  너무나 벅착 기대인 나머지,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 저녁도 아닌데, 유월절 마지막에 부르는 시편 118편의 찬양을 유월절이 되기도 전에 미리 부른다. 성경을 근거한 분명한 믿음을 제시한 제자들이다. 크도다 그들의 믿음이여~

예수님은 분명이 앞장 섰다.. 예루살렘의 길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제자들의 믿음을 깨어버리지 않았다.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기나긴 제자들과 무리들의 써러모니 속에서 아무말이 없다.

내 삶의 주인되시는 예수께서 분명이 나 보다 한발 앞서서
나의 쉴곳과 누울 곳을 준비하신다.
내가 기도하고 바랬던 거 처럼 모든 것을 이루어 주셨다.
내 삶을 돌이켜 살아온 것을 볼 때, 분명이 내가 바라던 그분임이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침묵하신다.
내가 지금 기뻐하고, 감사하고, 감격하고, 찬양하는 그 순간에 그분은 침묵하고 있다.
나의 하염없는 기쁨의 탄성, 갈채 받고 계시지만 그분은 침묵하신다.
나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만 나귀에 오르신 그분은 침묵하신다.

제자들의 행동을 야단치지 않고, 도리어 유대현자들(바리세인들)의 우려를 탓하시는 예수님..
언제나 그분은 다른 무리들과 다르게 그분 편에 서있는 부인할 수 없는 내 편이시다.
그러나 그의 길은 알 수 없고, 내가 측량할 수 없다.

예수님은 나의 종교적 행위로 만족시킬 수 있는 분이 아니기에..
그분이 어떻게 성취하실지 모르기게 그저 머리 숙일 뿐이다.

십자가 후 흩어진 제자들은 우리보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