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서 짐을 싣고 킬을 출발하여 남부독일 에얼랑엔에서 하룻밤을 자고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코스테 참석하고 우크라이나 리보브에 갔었습니다.
코스테 기간 내내 정말 또다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리보브는 인구 100만의 대도시로 서부 우크라이나에서는 가장 큰 도시라고 하네요.

한국 사람은 저희가 방문하기로 한 선교사님 가정이 유일한 가정....
GMS선교사인 이창배 선교사님은 저의 총신밀알 선배님으로 총신밀알 동아리 2대 커플이기도 합니다. 92년부터 10년을 몽고 위에 있는 러시아 브리야트 자치공화국에서 선교사역을 너무도 잘 감당하신 나머지 추방을 당하셨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선교지를 찾다가 리보브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브리야트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장애인 선교를 당연한 사명으로 아시고 사역하시는 선교사님 가정입니다. 첫 1년은 리보브에 있는 현지교회들(침례교,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라고 하네요)을 찾아 예배하고 교제하면서 사역의 길을 모색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기도하였고 작년 4월에 교회를 개척하셨답니다. 우리말로 하면 평안장로교회라고 하던가요? 지난 1월에는 오순절 계통의 신자들이 싹 빠져나가 지금은 약 10여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워낙 꿈이 크시고 브리야트 경험이 있으신지라 소신껏 사역하시는 모습에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토요일 중고등부 예배는 안 가봐서 모르지만 주일 오후에 있었던 주일학교는 어른보다 많았습니다. 양육의 주 방향을 어른이 아닌 아이들로 잡았다고 합니다. 먼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서는 답이 없었다고....

사실 동유럽을 몇 군데 다녀왔지만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별로 못 산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독일과 비슷하고 한국이 이들보다 좀 났구나였지 별 감동이 없었습니다. 역사 유적지도 많고....


그런데 우크라이나 국경이 무려 2시간이 넘게 걸려서 어두운 저녁이 되어서야 통과를 하고 도로에 딱 들어서는 순간.....아, 선교지라고 하는 곳이 이런거구나 했습니다. 그건 도로가 아니라 그냥 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포장은 됐지만 상태가 안 좋아 비포장 도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기 전에 우크라이나 치안 상태가 안 좋아 산적도 많고 도로도 안 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상상이 안 갔습니다. 그래도 유럽인데.... 부다페스트 한인교회를 목회하시는 문창석 목사님은 그러시더군요. "한번 가봐." 정말 그 말이 실감났습니다. 가보지 않고는 모르는 곳이었습니다.


한 20km 정도 달렸던가? 갑자기 차가 괴음을 내며 위로 솟았습니다. 요철이 있는 것을 모르고 더 늦은 밤이 되기 전에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 속에 시속 100km로 달렸거든요. 차가 쿵쾅쿵쾅 하는 가운데 갑자기 요철에 부딪치면서 살짝 날았다가 떨어지는데.... 아찔했지요. 다행히 별 이상(갑자기 부탄가스 냄새가 좀 났지만... 원인 모름)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돌아올 때 알고보니 사이드브레이크가 파손 됐습니다. 오는 길에 사이드브레이크가 없어 좀 신경이 많이 쓰였지요. 다행히 큰 파손이 아니라 감사했습니다. 요철이 있다는 표지판이 알고보니 있기는 했는데 독일의 경우 미리 속도를 줄이라는 표지가 나오는데 그게 없었으니 알길이 없지요.  그것도 고속도로에 준하는 고속 국도 중간에 갑자기 요철이 나타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지요.

어렵게 도착한 리보브... 핸드폰이 로밍이 안되더군요.  난감했습니다. 전화번호만 있지 주소도 없는데....

일단 리보브에 들어가면서 바로 주유소를 찾았지요. 시내이고 깨끗한 주유소를 찾아 이명선 사모님이 전화를 부탁했지요. 고밥게도 전화를 해 주더군요. 선교사님 교회는 안 받고, 집은 통화 중.... 핸드폰을 부탁했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아마 비싸서 못 하겠다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갑을 뒤지니 1유로가 있어서 부탁을 했지요. 저희는 여행 중에 현금을 안 가지고 가거든요. 1유로를 주자 바로 핸드폰으로 전호를 해 주더군요. 나중에 선교사님께 들었는데 유로를 아주 좋아한다고....


선교사님 집에서 3박을 했습니다. 아파트가 제법 좋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시설이 열악했습니다. 무슨 입구 문이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철문이었지요. 정말 공산주의 잔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 시설도 많이 고쳤다고 하는데 난감한 일이 몇 있었습니다.

물 사정도 안 좋아 대도시인데도 하루에 12시간만 나온다네요. 오전 6시부터 12시까지 다시 저녁 6시부터 12시까지...
그나마 대도시인 리보브가 그렇고 시골로 가면 상수도가 없는 곳이 많다고 하네요.

그래도 참으로 배운 것이 많은 여행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이 노숙자들 식사를 통해 전도하는 모습을 이야기로만 들었지만 그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주일 예배에 아직 사람은 많이 않았지만 식사 봉사를 통해 전도된 한 아주머니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면서 찾아왔으니까요. 그런 분들을 위해 빨리 교회를 좀더 넓은 곳으로 옮겨 목욕 시설을 갖추어야겠다고 하시네요.
노숙자들 식사 봉사, 장애인 시설을 돕고, 집시촌 사역자들을 후원하고 하는 사역에다 교회를 부흥시켜 이 사역들을 감당코자 하는 것이 선교사님의 비전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정교회 국가지만 서우크라이나와 동우크라아니는 말부터 다르답니다. 동부는 러시아어, 서부는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종교도 서부는 카톨릭이 강한 곳이라고 합니다. 특히 리보브는 종교성이 강한 도시라 여기저기에 십자가상(정교회에서 건립한 것)과 마리아상(카톨릭 것)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시내를 돌아보는 중에 목격되어졌습니다. 주일예배 후에 우리 가족은 전도지를 접고 선교사님이 브리야트에서 온 동역자 자매와 전도를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려고 하는 데 한 신사 한분이 막 화를 내면서 전도지(달력)를 교회에 들고와서 뭐라고 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카톨릭 신자인데 왜 전도하냐는 것이었습니다. 또 개신교인 침례교와 오순절 계통 교회들이 있지만 오히려 이들이 전도에 방해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별로 전도에 열심도 없고 오순절 교인들은 직통계시를 지나치게 신봉하는 나머지 교회에 들어와 질서를 어지럽히고 예배를 방해한다고....

이런 배경이 있어 선교사님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사역의 그림을 그리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아직 순수해서 다 받아들이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집중 양육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컴퓨터 교실과 기타 강좌 등을 열어 아이들이 교회로 오게 하고 그러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예배의 자리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도된 한 남자 아이(약 15살 정도?)는 주일 예배에도 와서 OHP를 맡았는데 찬양하는 모습이 그렇게 은혜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하여간 한국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지 다시 한번 느끼는 여행이었습니다. 또 이곳 독일이 얼마나 부요한 나라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지 선교사님들과 뜻을 이루어 이 전 유럽 장애인 선교의 꽃을 피우고자 하는 비전을 좀더 구체적이고 더큰 그림을 그리고 오는 여행이었습니다. 당장 6월 밀알 캠프에 이창배 선교사님은 어렵지만 꼭 기회를 만들어 참석하시어 강의 하나를 맡아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뭔가 좋은 것을 보여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고 떠난 여행에서 정말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코스테도 그렇고 우크라이나 리보브 방문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