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다 (요18:1-11)

 

예수를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예수 자신이 먼저 나아가 "너희가 누구를 찾느나?"고 묻는다(4).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는 그들의 말에 예수께서 "내가 그다(에고 에이미)"라고 대답하신다(5). 그러자 사람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진다. 놀라 자빠진다(6).  '에고 에이미' - 내가 그다 - 라는 말은 본래 모세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의 이름이다. 어스름한 횃불 속에서 들려진 "에고 에이미"라는 말이 이들에게는 마치 '하나님의 나타남'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를 잡으려는 자들에게 먼저 찾아가, 자신을 밝히신 이유를 요한은 제자들을 위한 것이라 설명한다(8-9). "너희가 나를 찾지 않느냐? 그러니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8)  예수는 마지막까지 자기 제자들 편에 서서, 그들을 지킨다.  "내가 그다"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들려지는 자리.... 그 하나님은 자기의 사람들을 하나도 잃지 않는다(9). 그분은 칼을 들고 설치는 베드로도(10), 자기를 부인할 베드로도(27) 잃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베드로' 같은 나 또한 잃지 않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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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부인과 예수님의 시인 (요18:12-27)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요한은 베드로의 부인에 대한 기사를(15-18; 25-27) 예수님의 심문 받음에 대한 기사를(19-24) 중심으로 앞 뒤에 배치한다.

문 지키는 여종에게 한 첫 번째 부인(15-18)과 불을 쬐며 하게 되는 둘째, 셋째 부인에 대한 기사(25-27) 사이에 대제사장들의 심문에 당당히 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대한 기사(19-24)가 놓여 있다.  13장 27절에 주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던 베드로는 18장에서 자기 목숨을 위해 주를 부인한다.  그에 반해 예수님은 전에 드러내놓고 말씀하셨던대로(20) 지금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이전과 다를바 없이 지금도 그는 드러내놓고 말하고, 드러내 놓고 증언한다(23). 요한은 이러한 예수님과 베드로를 번갈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밤이 예수님과 베드로의 마지막 밤은 아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후 불을 피워 놓고 베드로를 다시 만난다(21장).  베드로가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 말씀하신다(21:19).  13장과 18장 사이, 그리고 18장과 21장 사이... 하룻밤과 남은 평생의 시간 사이에 십자가를 향해 담대히 걸어가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놓여있다. 지난 하룻밤에 매여 남은 평생을 소진할 것인가, 아니면 남은 평생의 시간을 '주'를 따라 살아 갈 것인가?(21:19). 이 물음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이러했다. 베드로가 (대제사장들에게) 대답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행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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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 (요18:28-40)

 

유월절 식사에 참여하고자, 정결 유지를 위해,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의 관정에 들어가지 않는다(28). 그들의 풍습을 알기에 빌라도가 관정에서 나와 그들에게로 간다(29). 눈 앞에 유월절 양 되신 예수를 앞에 두고, 그를 잡느라 손에 피를 묻히면서도(31), 그들은 스스로 가지고 있다 여기는 정결함을 지키기 위해 손을 씻는다.  이방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부정한 것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으로 사람은 깨끗해질 수 있을까? 유월절 어린양의 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사람은 깨끗해진다.  스스로 씻을 수 없다는 것, 씻겨짐이 필요하다는 것, 예수가 자신을 씻어줄 때 자신들이 깨끗하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곧 은혜를 알 때, 사람은 예수가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에 들어간다(38).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 그 어떤 것도 더러운 것은 없다. 그러나 감사로, 은혜로, 믿음으로 주어진 것을 '받지' 않을 때, 그것은 부정한 것이 된다(롬14:14,20).  감사, 은혜, 믿음 없이 행하는 모든 것이 죄다(롬14:23).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예수의 나라는 살아 있음을 은혜로 알아, 믿음과 감사로 오늘을 살아가는 자들이 마주치게 되는 나라다. 예수의 나라가 속해 있지 않다는 세상 나라는 그 자체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을 자기 자신의 것인양, 자신의 마땅한 권리인양 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오늘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 당연한 권리라는 듯, 누구 보다 더 많이 갖는 것이 마땅한 나의 특권이라는 듯, 누구 보다 더 많이 누리는 것이 '노력하고 살아 온' 나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듯 살아가고 있는 자들, 즉 참된 실상(진리)을 보지 못하는 자들의 오늘이 세상 나라다. 

 

빌라도가 예수를 놓아줄 권세가 있다 여겨 예수를 놓아주고자 한다(39). 그러나 위에서부터 주지 않았다면 그는 예수를 해할 권한도, 놓아줄 권한도 없다(19:11). 사람들은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진리를 알지 못한다(38). 오늘 내가 눈을 떠 차갑게 빛나는 햇살을 볼 수 있음은 하나님이 내게 '눈'을 주시고, 볼 수 있는 '감각'들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유월절 식사를 먹을 수 있음은, 유월절 양이신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28). 오늘 내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앞에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아무 죄도 없은 그가(39) 나를 위해 죽고, 대신 나를 자유케 하였기 때문이다(40). "우리가 다 그(예수)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 것이라."(요1: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