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하는 사람들 (역대상 25장 1절-31절)

2012년 5월 27일 주일

찬양을 하면서 은혜를 받고, 찬양을 하면서 꿈을 꾸고, 찬양을 하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찬양을 하면서 깊은 감사에 젖고, 찬양을 하면서 춤을 춘다. 소리, 노래, 음악.... 하나님은 소리를 발하심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빛이 있으라~!'는 다만 의미를 담은 관념만이 아니라, '말'로 선포된 '에너지'이며, 음조와 악센트를 가진 '음악'이고, '노래'이다. 음악회에서 온 몸을 두드리며 관통하는 '소리'를 들으며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닌, 몸으로 듣는 것임을, 영혼과 마음을 두드리며 새롭게 하는 '힘'임을 경험하게 된다. 영혼의 반응인 눈물과 감동, 춤과 노래... 음악은 힘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음악적'인 존재로 지으셨다. 우리가 매일같이 하는 '말' 또한 관념의 전달이 아닌 '소리' 곧 '음악'인 것이다.

24반의 음악을 맡은 찬양대장들, 12*24=288명이 제비를 뽑아 직임을 얻었다. 영혼을 만지고 새롭게 하는 음악을 노래하고 연주하는 자들이라면, 그들은 다만 소리를 내는 '기술자'들일 수 없다. 소리 기술자의 노래가 사람 영혼을 깨울 수 없다. 노래하는 자들, 그들은 모두 '예언자'(2)이며, '선견자'였다(5).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었고(5 - 개역성경 번역엔 그 의미가 드러나지 않지만), 말씀 속에서 꿈과 환상을 보는 자들(선견자= '호제' =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었다. 레위인중 찬양을 담당하는 사람이 4천명인 것은 그러니 우연이 아니며, 결코 많은 숫자의 배정도 아니다.

찬양이 없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영혼이 소성케 됨 또한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찬양 없이 보내는 하루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시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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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지키는 사람들 (역대상 26장 1절-32절)

2012년 5월 27일 주일

여덟째 브울래대이니 이는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5).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대상 13:14)
4천명의 문지기 중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 62명이 모두 능력있는 자들로서 문지기의 임무를 감당했다.

도대체 문지기의 임무가 무엇이기에 찬양대에 버금가는 4천명의 능력자들이 필요 했을까?

20-28절에 따르면 문지기의 임무엔 곳간 관리 또한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문지기는 일종의 재정 담당관의 역할을 했던 자들이다.

그런 문지기 가문의 대표가문인 오벧에돔 가문은 그들 자신이 여호와의 복을 받아 누리는 자들이었다(5).

대상 13:14의 가드 사람 오벧에돔이 문지기 오벧에돔과 동일인일지 알 수 없으나, 오벧에돔이란 이름은 '그 집과 소유에 복을 받은 자'라는 뜻을 나타내는 대명사였다. 그런 자들이 모든 성 사람들의 출입과 모든 재물의 출납을 관리한다. 복은 복을 부르고, 넘쳐남은 넘쳐남을 부르는 법이지 않던가!

레위 자손 중 고핫 가문에 속한 이들이 주로 이 복을 누리고, 나누고, 넘쳐나게 하는 일을 맡아 일했다. 모세의 아들들도 이 일을 맡아 누렸고, 고라의 아버지 이스할의 자손도 이 일을 맡아 누렸다.

지키고 열어줌의 선택,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흘려 보낼 것인가의 결정이 복을 좌우할 터!

내가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것이 과연 그럴 만한 것인지, 내가 참으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내가 베풀고 나누고 투자할 사람들과 일들은 누구인지, 넉넉하게 주고 나누고 있는지, 생각한다.

나와 내 집이, 우리 교회 모든 성도의 집이 오벧에돔의 집이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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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사람들 (역대상 27장 1절-34절)

2012년 5월 28일 월요일

12반의 군대 장관들과 12 지파의 지도자들의 이름, 왕의 재산 관리자들, 왕의 모사들의 이름이 이어진다.

12반의 군대 장관들의 이름을 보다가, 익숙한 이름이 많아 찾아본다. 대상 11장의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들과 대분분이 겹쳐진다(2-15).

아둘람에서 시글락을 거쳐 헤브론과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다윗과 함께 했던 이들이 다윗의 군대 장관들이 된다.

보통 대권을 잡으면 인수위에서 일했던 자들 중 일부는 요직을 얻지만, 나머지는 버려지는 법이다.

대권을 잡으면, 어려웠을 때 함께 했던 속속들이 자기를 아는 이들이 오히려 버거워지는 법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을 임명하여 그들을 자기 수족으로 만드는 법이다. 오랜 동지들은 그렇기에 오히려 불편한 법이다.

그런데 다윗은 그 오랜 동지들로 새로 임명되는 군대장관의 거의 대부분을 채운다. 그들과 함께간다.

이런 다윗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것이, 베냐민 족의 우두머리로 아브넬의 아들 야아시엘을 세운 일이다(21).

아브넬... 한 때 원수라 할 수 있었던 사울왕의 군대장관이요, 사울의 아들이스보셋을 내세워 다윗에 대항했던 인물 아브넬.

그런 아브넬의 아들을 다윗은 베냐민 지파의 우두머리로 임명한다. 여러가지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에게 신뢰를 주고, 그와 함께 간다.

하나님이 붙여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이 내게 붙여준 이들이라면 반드시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길의 출발점과 도착점은 '신뢰'와 '의로움'(=의리를 지킴 = 헤세드, 체다카)이다.

사람을 얻는 것, 얻은 사람을 마지막까지 신뢰하는 것, 내 쪽에서 보일 '의'의 몫을 어떤 경우에도 거두지 않는 것,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 가는 것.

아히도벨과 후새를 함께 품는 것(33). 예수 십자가 주위에 모인 우리들 모두는 그의 의로우심 안에서 함께이다.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