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 - 좌절된 꿈의 치유 ( 14:1-35)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은 밤새 울었다(1). 그리고는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4). 그러나 정말 애굽으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껏 목표로 삼아왔던 것을 이룰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좌절된 꿈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삶은 방향을 잃는다. 방랑이다.

 

이스라엘은 민수기 14장에서만 여러 번 원망한다(14:2,27,29,36). 원망은 환경이나 상황이 좋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대가 배신당했을 때 생긴다. 꿈꾸며 달려왔던 것에 도달할 수 없다 여길 때, 어떠한 이유에서든 기대가 배신당했을 때, 마주치는 모든 일들이 원망의 대상이다. 원망은 책임을 다른 것에 돌리며 미워하는 것이다(3,10).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리에 좌절된 이스라엘이 놓여 있다.

 

꿈꾸는 사람으로 불렸던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면서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자리로 지속적으로 내몰린다. 반복되는 기대의 배반 속에서 요셉의 기대는 좀 더 나은 미래가 아닌 여전히 함께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믿음이다.

 

하나님께 등을 돌림으로 나아갈 길 자체를 삼켜버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걸어갈 길 하나를 열어준다. 바로 광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25). 비록 40 년간 자신들의 죄악의 짐을 짊어지고 마침내 그곳에서 소멸되겠지만(34) 40년의 광야는 또한 그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험하며 약속의 땅을 꿈꾸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31,33). 그들이 그 길에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기뻐할 수 있다면 광야는 더이상 좌절된 꿈의 상징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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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4장 – 여전히 있는 소망 (민14:26-45)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라면, 회개는 울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약속의 땅에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고(30), 오히려 40년간 광야에서 자신들의 죄악을 담당하며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34) 이스라엘 백성은 소리 높여 운다(39). 그리고는 자신들이 죄를 범했다며 하나님이 말씀하신 곳으로 올라가겠다고 한다(40). 그러나 이것은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일 뿐이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광야 길을 걸어 가는 것이다. 자신들의 죄의 짐을 담당하며 '하나님의 미워함'이 무엇인지를 겪어내는 것이 그들의 순종이다(34). 

 

레위 족속이나 기브온 백성이, 사람이 하나님 편에 섰을 때 저주의 선고 가운데도 생명의 길이 있음을 나타내 주었듯, 이들 또한 오늘이라 불리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간다면 저주 가운데도 생명의 길이 있음을 겪어 드러낼 수 있으리라.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죽기 위해 느보 산을 오른다(신34:1). 그로 인해 모세는 광야에서 죽은 세대들을 향해 광야에서 죽는 삶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신34:5 -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울며 슬퍼해야 했던 것은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거나 그들이 광야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돌아선 그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42).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을 경히 여기고 산으로 올라갔을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고, 그들은 결국 패하여 호르마(진멸)까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45). 

 

좌절된 꿈의 자리, 앞으로 나아갈 소망이 사라져버린 그 자리에 놀랍게도 여호와의 언약의 궤는 진중을 '떠나지!' 않고 있다(44). 그러니 40년, 자신들의 죄악을 담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광야에도 여전히 소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