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8 - 여호사밧 (대하 18:1-19:3)

 

유다의 가장 경건하고 치밀한 개혁의 실천자였던 여호사밧은 기이하게도 이스라엘의 가장 혼합종교적인 왕이었던 아합의 집안과 교제한다. 혼인으로 맺어지고(1), 전쟁에 함께 하며(3), 심히 악을 행하는 자라 평가되는 아하시야와도 교제한다(20:35). 이러한 교제에 대한 역대기 기자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선견자 예후가 아합과 함께한 여호사밧을 꾸짖고(19:2), 엘리에셀이 아하시야와 함께한 여호사밧을 꾸짖는다(20:37).

 

여호사밧의 율법 중심의 통치와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정책은 흔들리지 않았고(19), 대규모 적들의 침략 앞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20). 그런 여호사밧이 어찌 아합의 집과 교제하였던 것일까? 그는 인정에 끌려 다니는 성격의 소유자였을까? 거절하지 못하고(3), 한 번 맺은 인연은 자기에게 해로워도 지켜내는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일까(cf.29)? 아니면 그는 자기를 통해 아합 집이 선한 영향을 받기를 바랬을까?

 

정에 이끌리는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목적과 의도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합 집안과의 교제와 관련하여 하나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여호사밧은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고 자기의 길을 돌이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19:2; 20:37).

 

아합과의 연합 작전의 결과 아합은 죽고 여호사밧은 살아 돌아 왔다. 그 후 여호사밧은 이스라엘과 군사적인 행동에 함께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 교제하며(20:35) 그와 더불어 에시온게벨을 통한 다시스 항로의 운행을 도모한다(20:36). 그에 대해 선지자가 책망하고 배들이 파선된다. 그 후 여호사밧은 이와 관련하여 아하시야의 제안을 거절하고(왕상22:49), 함께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20:27).

 

한 번, 두 번의 실수를 행하고, 잘못 된 길을 가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벌어진 아합의 죽음과 배의 파선을 보고 여호사밧은 돌이킨다. 어리석은 사람은 한 두 번의 경고로 자기 길을 돌이키지 못한다. 주위에 누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을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한다. 역사가 주는 큰 교훈이 있다면 사람은 잘못된 역사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역사를 통해, 한 두 번의 사건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자기의 길을 돌이킨다. 이 또한 은혜이겠지만, 아사를 통해 배워온 율법의 가르침과 본인 자신 백성들과 함께 한, 율법을 따라 사는 삶의 훈련이 이러한 돌이킴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악과 죄에 발을 한 번 담갔다가 빼는 것은 그래도 가능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에 깊이 빠졌던 자가 그 곳에서 빠져 나오는 일은 뼈를 깎는 아픔과 각오가 필요하다. 아니 은혜가 필요하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의 궁전과 신전들을 지어주며 그들과 살아가는 길에 오랜 동안 자신을 내 버려둔 결과 세 번에 걸친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거기서 돌이켜 나오지를 못한다(왕하 11:10).

 

여호사밧은 전쟁을 앞두고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묻는다(4). 미가야라는 선지자는 나쁜 일로만 예언한다는 아합의 불평에 대해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7) 라고 말하며 그 말이 길하든 흉하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를 보인다. 결국 아합과 함께 출전하나, 위기의 순간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 목숨을 건지고(31) 돌아와 나라를 율법 위에 견고히 세워가는 일에 더욱 헌신한다. 그런 여호사밧이었기에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고, 그에게 피할 길을 내셨으리라(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