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와 겸손 (벧전 3: 1-12)

- 2012년 6월 5일 화요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며(시34:18), 자기를 의지하는 온유한 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신다(12;시34:15)

베드로는 내내 시편 34편과 함께 간다.

아시아의 교회는 외부로부터 내내 핍박과 박해를 겪고 있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되었으나(시34:8), 핍박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 때, 하나님의 선함을 맛본 자들의 삶의 방식은 오로지 '선을 행하는 것'뿐이다.(9.11.13)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 사람들 속에서, 신자는 자기에게 욕하는 자에게 오히려 복을 비는 자다(9).

그는 세상을 축복하는 제사장이기 때문이다(2:9).

 

욕을 먹으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악한 일을 당하며서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는 사람은 정상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이 깨어진 자' 곁에 가까이 계시며, '마음이 뭉개진 자'를 구원하신다(시34:18).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인하여 그들의 '뭉개진 마음(타페이노스)'은 마침내 '겸손'이 되고, '깨어진 마음'은 '온유'(프라우스)가 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 - 누군가에게 먹은 욕과, 억울하게 당한 악한 일로 인해 마음이 깨지고 뭉개진 자들, 

분노와 원한의 마음의 짐에 눌린 자들 -을 부르시는 예수님은, 그 자신 마음이 온유(프라우스)하고 겸손하다(타페이노스).(마11:28-29)

욕을 욕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을 뿐 아니라, 욕하는 자들의 분노를 풀어주고, 해악을 끼치는 자의 두려움을 만져주는

주님의 마음, 온유와 겸손... 이것은 세상의 악과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베풀어야 할 절대 덕목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온유함으로(4) '순종'해야 하고(1.5.6),

남편은 아내를 온유함으로 '귀히 여겨야' 하며(7),

그리스도인은 겸손함으로 '서로 사랑해야'하고(8)

세상을 향하여는 온유와 겸손으로 복을 빌어야 한다(9).

 

주님, 마음이 깨어질 때, 마음이 뭉개질 때, 약속대로 가까이 계셔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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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열심당(Eiferer des Guten) (벧전 3장 13절-22절)

2012년 6월 6일 수요일

"만일 너희가 선의 열심당이 된다면, 누가 너희를 악하게 대할까?"(13)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중에 셀롯인 시몬이 있었다. 여기서 셀롯이란 말(='젤롯')은 이스라엘의 거룩과 구별됨을 위해 목숨을 걸고 열심을 내었던 자들을 가리키는 전문용어였다. 비느하스의 열심, 엘리야의 열심 등에서 비롯된 말로, 바울 자신 과거의 자신을 '젤롯'이라 불렀다.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을 했던 시카리들도 일종의 젤롯이었다. 셀롯인 시몬은 아마 이 부류였을 것이다.

... 그런데 베드로은 그리스도인에게 '선의 젤롯타이'가 되라고 한다.
선이 지배하고, 선이 이기고, 선이 승리하는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오직 선만을 행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이란다. 선의 젤롯타이가 따라야할 한 모델이 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거룩을 위협했던 자를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죽인 비느하스가 아닌, 경건하지 않은 자, 악한 자를 위하는 열심으로 그를 대신하여 죽은 그리스도다(18).

그리스도 또한 선과 의를 위하는 젤롯이되, 그러나 그는 불경건한 자를 죽임으로 거룩을 지켜내는 젤롯이 아닌, 불경건한 자에게 선을 행하고, 그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고, 그를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므로, 불경건한 자를 의의 삶으로 불어내는 젤롯이었다.

베드로는 예수 믿는 모든 자들을 이러한 젤로타이로 불러내고 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자로 살라고 우리를 부르되(17), 그 일을 열심으로 행하라고 명한다. 육체의 더러움을 제해 버렸기에 우리가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선한 양심에 대한 소망의 간구 가운데 우리는 세례를 받았다(21). 우리 자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불의한 우리를 위해 의로운 예수가 죽임을 당했다. 그로 인해 우리 양심이 깨어나고, 선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그렇게 깨어난 선한 양심으로(16.21), 주를 따라 선의 열심당이 되는 것!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 악을 악으로 갚고, 욕을 욕으로 갚는 악순환을 끊어 내고, 그 자리에 '복을 빌어줌'을 순환시키는 것. 나는 선의 젤롯이다. 우리는 선의 젤로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