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형제들”(20:1-31)

 

부활 후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 부른다(17).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나의 친구다라고 말씀하시긴 하셨어도(15:14), ‘내 형제라니? 예수님은 나의 놀라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내 아버지가 곧 너희 아버지고, 내 하나님이 곧 너희 하나님이다”(17)

 

느닷없는 예수님의 형제호칭은 분명 부활과 그로 인해 가능해진 성령의 오심과(22) 관련이 있다. 죽은 자의 부활(9), 그것이 모든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평강을 누림(19,21), 죄의 용서(23), 성령을 받음(22) – 부활하신 주님에 제자들에게 하신 세가지 약속이다.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 죄 용서의 법정적 근거가 마련되었고(23; 12:32; 3:25), 그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사람 안에 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22; 5:5).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거하는 결과는 두려움과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평강이다(19,21,26; 16:33; 5:1).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거하는 자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17). 그들은 맏아들 예수의 형제(8:29),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다(17). 요한은 이렇게 바울과 같이 간다.

 

부활 후 핵심 교리가 될 이 용어들은 그런데 제자들의 무지, 눈물, 의심을 배경으로 나타난다. 안식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이 비었음을 본다. 그 소식을 듣고 제자 둘이 달려가 이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예수가 다시 살아났음을 알지 못한다(9). 마리아 또한 사라진 예수로 인해 다만 울뿐이다. 그런 마리아에게 예수가 나타나신다. 마리아는 그러나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예수는 그런 자기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 부른다. 그날 저녁 마침내 예수가 제자들 앞에 나타난다. 제자들이 보고 기뻐한다. 예수께서 용서, 평강, 성령을 명한다. 그 자리에 없던 도마가 다른 제자들의 말을 듣고도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 8일 후 그런 도마에게 예수께서 나타나 자기 몸을 만지게 한다. 마침내 도마가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

 

나 또한 그렇다. 기실 용서, 성령, 평강을 나는 이미 그분 덕분에 누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보지 않고는 잘 믿지 못하고,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자주 이해하지 못하고(9), 예수를 만나고 또 만나면서도 다시 고기 잡으러 디베랴 바다로 가기도 한다(21:1-3). 그런 제자들을 예수는 다시 찾아가신다(21:1). 그렇게 하여 제자들도 나도 마침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게 되었다(31). 예수는 이미 나를 그의 형제로 대하시고, 하나님 또한 나를 그의 아들로 여기신다(17).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언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