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의 해석학 (고전 13:1-13)

2012년 7월 25일 수요일

"사랑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1,2,3 /If I have not love, I am nothing.)"  

사랑은 '상태'가 아니라, '소유'다. 내게 일어나는 감정 현상이 아니라, 내가 소유하고 붙잡고 유지하고 지켜내고 키워가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오래참음(4)으로 시작하여 모든 것을 참는(7) 것으로 이루어가는 의지적 활동이다.

 그 때에 사랑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믿음과 소망이다(7,13).

 

권력의 해석학, 욕망의 해석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소망-사랑의 해석학도 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사랑한다, 나는 믿는다, 나는 소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살아 간다"도 있다.

전자가 아니라 후자가 진짜다.

 

"그 때에는 내가 알려졌던 대로 나도 온전히 알 것입니다."(12 직역)

사람은 해석의 주체일 뿐 아니라, 해석의 객체이기도 하다. 아는 자일 뿐 아니라, 알려지는 자이기도 하다.

 

아는 나, 알려지는 너, 아는 너, 알려지는 나....

그 사이의 엇갈림과 불일치, 오해...

약간의 시간의 차이와 약간의 표현의 차이만으로도 엇갈림의 폭은 깊어질 수 있다.

그 차이를 매우는 것이 사랑이다. 오래참음과 기다림, 믿음과 소망이다.

 

'아는 나'와 '알려지는 나'는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나'와 '사랑 받는 너', '사랑받는 나'와, '사랑하는 너'는  

그 모든 틈을 매우고도 남음이 있다. "그 때에는 내가 알려졌던 대로 나도 온전히 알 것입니다."는 지식의 영역이 아닌, 사랑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사랑은 어른의 일이다. 어린아이는 참을 줄 모르나 어른은 기다릴 줄 안다(11). 

어른이 참을 줄 하는 것은 경험 때문이다. 경험을 통해 어른은 자신이 아는 것이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아는 자'와 '알려지는 자' 사이에 엇갈림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뒤늦게 도착하는 만남, 말, 깨달음이 일찍 도착한 '인상'들을 새롭게 할 것임을 안다.

믿음, 소망, 사랑... 은 한계와 부족을 아는 어른들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믿음 소망 사랑으로 누군가를 만날 때에만, 사람은 사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