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사는 문제 (고전 8:1-13)

2012-07-15 주일

예전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하루에 한끼만 먹고 일을 하던 친구와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벌써 몇 년째 저녁 한끼 만을 먹고 지내왔다고 한다. 좀 마르기는 했지만 키도 크고 건강한 몸을 가진 청년이었다. 한 곳에 오랜 동안 머물지 않고, 몇 개월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가서 거기 머물며 일을 하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형태의 삶을 반복해 왔다고 했다. 그 동안 먹는 횟수가 줄어들고, 딱히 먹는 데서 기쁨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끼를 무조건 고집하는 것도 아니지만, 굳이 세끼를 다 먹어야 할 이유 또한 없어서 그냥 한끼씩만 먹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잘 살고 있었다.^^

 

음식은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8).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13)“

 

여기 또 한 사람, 먹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기에 먹는 것을 조절하고 절제하는 사람, 바울을 만난다. 세상에 우상은 없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지식을 따른다면 고기를 먹는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4),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은 형제가 그로 인해 실족할 수도 있다 생각한다면, 사랑으로 인해 고기를 먹을 수가 없다(11).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살았다.

 

더 먹는다고 삶이 더 풍부해지는 것 아니며, 덜 먹는다고 삶이 더 곤궁해지는 것이 아니다. 하루에 4끼를 먹고, 먹는 음식이 산해 진미라고 사람 마음이 더 행복하고 넉넉해 지는 것 아니며, 그렇게 먹지 못하고, 하루에 한끼를 먹고 산다고 사람 마음이 가난해져야만 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것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식욕, 탐욕, 정욕, 명예욕, 성취욕, 승부욕 등등 수 많은 욕망이 있어도,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사람이 죽고야 마는 욕망은 오직 하나 사랑일 것이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이유는 그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고(11), 바울이 먹는 것을 절제하는 이유도 형제에 대한 사랑때문이다.

 

머리로 알기는 다 안다(1a). 그러나 몸으로 행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1b). 그래서 항상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사랑이라는 말을(11)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한다. ‘목숨을 거셨다는 그 사랑이 한낱 미사어구나 장식적 수식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말 그대로의 진실이라면, 바울을 사로 잡았던 그 사랑이 나 또한 사로 잡을 것이고, 그 때에 나 또한 사랑에 목숨을 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