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역사적인 기록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주민은 약 55000명으로 추산됩니다. 출애굽에서 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 때는 주민을 제외한 순례객만 해도, 약 125000명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유입됩니다.

성전의 북쪽, 그러니까 지성소 건물과 바로 붙어있는 복쪽에는 안토니아성이라고 불리는 높다란 망대형식의 요새가 있습니다. 여기는 로마의 용병들이 성전뜰과 예루살렘을 감시하였는데, 특히 유월절때 밀려오는 순례객들은 더 없는 위협입니다. 조금마한 소요해서 군중들은 폭동으로 치닫을 수 있고, 유혈사태가 빚어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첫쨋날 성전에 주변에서 돈을 바꾸고, 성전제물을 팔던 사람들을 내쫓았고,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성전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성전을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는 곳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
둘째 날에는 내 놓으라하는 유대 종교의 대표자들, 대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사도개인들과의 논쟁에서 그들의 본심을 들어냄으로서 승리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타락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모인 백성들에게 예언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적은 예루살램 골목 골목에 이어지고, 입과 입으로서 전달되어, 예루살렘으로 밀집되어있는 약 180000명의 사람들이 듣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면, 왜 이토록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잡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고까지 하는지 분명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폭동이 나서 사람들이 죽는 것 보다는 지금의 성전제도와 사회제도가 유지되는 편을 선택하는 것은 지도자들이 할 일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저의 판단이고, 성경의 기록은 다른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의 검은 속을 다시 한번 폭로합니다.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라"  
그들이 두려운 것은 정말 예수님의 이틀간의 가르침으로 통해서 백성들의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고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던 그들의 권위는 땅에 추락했습니다.
아무런 무기도 없고, 아무런 권력도 없지만, 진리를 가진 사람은 돈과 권력, 정치력과 군사력을 가진 사람보다 무섭습니다. '진리는 고독하지만 힘이 있습니다!'

백성의 지지도가 종교지도자들의 존재와 안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백성들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 백성과 예수님을 때어놓고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죽일까? 이것이 그들의 고민입니다.
결국 백성들은 그들의 정치술과 꾀에 말려들어, 이틀 후에는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죽이는 분노한 무리로 돌변할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을 그들의 배를 채우고, 지위와 채통을 유지시켜주는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위한 꼭두각시......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죽인 자들(종교지도자들, 백성, 무리)를 위해 용서를 구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유언이었습니다.

진리란 이렇습니다. 사람이 따라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 자기 편이었다가 다른 편으로 돌아설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고독하게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자신의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쓰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진리의 사람입니다.

내가 사람들 눈에 좋게 하랴, 하나님 보기에 좋게하랴...

거짓과 허울로 가득한 세상에서
세상과 짝하여 허영심으로 들뜨지 않게 하시고
만가지 내 눈에 좋은 것과 내 입에 단 것과 내 귀에 좋은 소리 보다는
한 마디에 진실에
한 마디에 참된 말에
한 마디에 진리에
목말라 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