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지 않는다면 사는 것이 아니다 (요15:1-17)

 

삶의 소소한 기쁨이나 사랑은 함께 사는 것에서 발생한다.
혼자서 기쁠 수 없고, 혼자서 사랑할 수 없다면,
기쁨도, 사랑도, 행복도 다 함께 살 때 누려진다. 

예수와 함께 사는 삶, 다른 누군가가 아닌 예수와 함께 사는 삶에,  기쁨도(11), 사랑도, 행복도 있다(4,5,6,7,9,10,14,15,16).
아니 진짜 삶의 기쁨과 사랑과 행복은 예수와 함께 살 때 얻어지고 누려진다.

그런 '풍성한 삶'을 요15장은 열매 맺는 삶이라 표현한다(2,4,5,8,16).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2,4,5,6).
그러나 실상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16).
나무가 가지를 만들고, 나무가 가지에 영양을 공급하며,  나무가 가지를 통해 열매를 맺는다.

나무 되신 예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9),  종이 아닌 친구로 여겨 목숨을 내어주는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14-15),
내가 아닌 그가 먼저 나를 선택했다는 사랑의 시원에 거하는 것(16),  그것을 통해 열매는 맺어진다.

함께 하던 가족이 한국으로 떠난지 이제 2주,  기쁨이나 사랑을 추억 속에서 건져 올린다.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지 않다면, 그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와 함께 살지 않는다면, 그 또한 온전한 의미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 생명이 되신 예수 - 그가 내 안에, 나와 '함께' 살고 있다(4).

---------------------------------------------------------------------

다르게 살기 (요15:18-27)

 

요한복음에 따르면 사람은 세상에 속하든지 아니면 예수에게 속하든지,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눠진다(19). 세상은 예수와 그에게 속한 자들을 미워하고(18), 예수는 세상에서 자기에게 속한 자를 선택하여(19) 자기의 말을 따라 살게 한다(20). 그러나 이것은 세상을 미워하는 방식이 아닌, 세상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방식이다(3:16).

사랑은 무차별적이 되거나, 동질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되는 것이다. 다름이 창조의 근원이고, 사랑의 근원이며, 변화의 근원이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는 세상과 다르게 산다. 그 다른 삶은 미움도 만들지만, 사랑 또한 만든다.

예수의 사람들이 세상과 똑같은 것을 목표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그들을 미워할 일도, 사랑할 일도 없다. 그러나 예수의 사람들은 세상과 다른 것을 목표하고,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들의 다름은 예수의 말을 지키는 것을 통해 증거된다(20,27)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고, 그들을 제거하려 하나, 예수의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예수에게 속한 자로서, 예수의 말을 따라 살아가는 것으로 세상을 위하고, 세상을 사랑한다.

사랑 한다면, 똑같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달라져야 하고, 달라지려 한다면, 다른 누구의 말이 아닌, 예수의 말을 기억하고(20), 그의 말을 목숨처럼 지키며 살아야 한다. 예수 자신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셨던 것처럼...(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