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9 - 사람의 자리와 책임, 도피성 (19:1-21)

 

도피성에 대한 내용이다. 아무 원한 없이 부지중에 그 이웃을 죽게 한 사람의 생명을 보존케 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 도피성 3곳을 세우라 하신다(4). 죽임을 당한 자의 가족의 입장에서 비록 부지중에 행해진 일일지라도 그 피를 갚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의도 없이 부지중에 살인한 자의 생명을 보존하여 억울한 피가 흘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6).

원한을 가지고 누군가를 미워하여 의도적으로 이웃을 죽게 한 경우 그 때 도피성은 그를 받아 주지 않는다. 무죄한 피를 흘린 죄로 인해 그의 피 또한 흘려져야 한다(11-13). ...

그러면서 소위 ‘동해복수법‘의 원칙이 천명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손에는 손, 발에는 발, 생명에는 생명“으로 갚아 그들 중에 악을 제하라는 것이다(21).

도피성의 존재, 그것은 다른 의미를 포함하겠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자리와 책임'에 대한 성서의 시야를 확인하게 된다. 도끼로 나무를 하다가 도끼를 놓쳐 누군가가 죽었다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여기서 신명기 기자는 어떤 신학적인 해명이나 운명론적인 설명이나 더 깊은 하나님의 뜻이나 어떤 신비한 이유 등에 대한 사변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시야의 평면은 신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영역이다.

“무죄한 피가 흘려졌으나 이는 하나님의 더 깊은 뜻에 의한 것이니 부지중 살인한 자를 용서하라“거나 “비록 사고로 죽었지만, 본래 그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라는 형태로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원인규명의 자리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설명하고자 하지 않는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가족의 마음(6), 실수로 아무 의도 없이 사람을 죽인 자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4), 비록 부지중에 벌어진 일이지만 도피성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는 것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취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과 그러한 자유의 구속을 통해 스스로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 등 그 시각과 설명이 ‘인간적‘이다(cf. 민35:25-28).

상호 논쟁과 다툼이 있을 경우 제사장과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누가 거짓으로 형제를 모함하는지를 판명해 내야 한다(18). 누구 한 쪽의 이야기만 듣고 사건을 판단해서는 안 되며 둘 또는 세 증인의 입을 통해 사건을 여러 이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확인하고 또한 모든 내용을 자세히 조사하여 거짓과 모함을 분별하여 판단해야 한다(18).

생명에는 생명, 눈에는 눈이라는 원칙은 ‘피해 당한 자의 권리‘와 ‘피해 입힌 자의 책임‘ 사이에 다른 어떤 설명이 끼어들 수 없음을 천명한다. 신학적 사변이든 이데올로기적 해명이든 역사의 발전을 위한다는 변명이든 이 자리에 끼어들 것은 없다. 오직 ‘누군가의 폭력으로 고통 당한 자의 아픔에 대한 확인‘과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함으로 아픔을 낳은 이가 져야 할 마땅한 책임‘, 곧 눈에는 눈, 생명에는 생명이라는 시야가 있을 뿐이다. 변명이나 해명이 아닌 책임 - 그것이 사람의 몫이리라.